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모유, 즉 어미의 젖이다.
아이의 영양을 책임지도록 신이 창조한 엄마라는 단어의 첫 신호탄과 같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모유, 아니 초유조차 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무섭다는 젖몸살이 오기라도 하면 나의 컨디션이 난조 될 상황이기에 젖을 말려야만 했다.
필사적으로 유두에 수유패드를 대고 압박붕대를 했다. 일주일 가량이 지나자 가슴이 딱딱해지고 열감이 올라오면서 몸살이 왔다. 새어 나오는 모유에 수유패드를 더 자주 갈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유방 병동실 간호사들의 조치가 허술했다. 진통제 외 별다른 처치가 불가능했다. 모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어떤 젊은 간호사가 말했다
'저희도 산모 유방암 환자는 처음이라..'
엎친데 덮친 격. 시기상 여름이었다. 무더위로 가슴에 흥건히 땀이 찼다. 압박붕대 속 모유와 땀 때문에 간지럽고 굽굽하고 갑갑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아픔을 참는 것. 팔에 링거가 꽂혀있어 씻는 것 조차 불편했기 때문이다.
한편 다음 날은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편히 잠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림프까지 많이 번졌을까?'
'다른 장기 여기저기 전이되진 않았을까?'
'전이가 되었으면 난 어떡하지? 죽는 건가.'
별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채워질 때쯤 숨을 쉬기 어려웠다. 폐에서 색색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심호흡이 가파르다.
'결국 폐로 전이되었나 보다. 내 인생 망했다.'
걱정 가득했던 상상 속 생각들을 조합해 스스로 전이 진단 확정을 짓기에 이르렀다.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호흡 확인용 기계를 가지고 와 수치를 쟀다. 평균 이하로 계속 떨어졌다.
띠띠띠 띠띠띠 (평균 이하로 떨어지면 나는 소리)
산소호흡기를 이용했다. 동틀 때까지 계속 측정했다. 남편은 한숨도 자지 못했고 간호사는 새벽 내내 수시로 나를 확인하러 왔다.
밤새기 함께 병실을 쓰던 환우들도 신경 쓰였을 것이다.
커튼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
'저 새댁은 무슨 일 이래'
'저 새댁도 유방암인가?'
50대부터 70대까지 주로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여성 환우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로 젊은 사람이, 옷은 분만 환자복, 항암 전이라 아직 머리카락은 남아있으니 궁금한 대상이었을 터다.
커튼을 젖히자 질문이 쏟아져 내렸다.
'새댁. 새댁도 유방암이야?'
'몇 살이야?'
'새벽에는 무슨 일이야?'
출산한 상황이었다고 하자 다시 질문 세례를 받았다.
'아휴 어쩜 좋아.. 쯪쯪 그럼 애기는?'
'앞으로 애기는 어떡해?'
'출산 때문에 알고도 미룬 거야?'
'그전까지는 몰랐어?'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한 사람이 물어보면 또 다른 사람이 물어보고 새로운 사람이 입원하면 그분이 물어보고.
아파도 역시나 병실이라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암'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놓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넘쳐흐르는 정 많은 한국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에필로그
'폐에 물이 차있고, 압박 붕대로 계속 가슴을 조여서 호흡에 이상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폐 전이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