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by 유나시


몹시 힘들었다. 수술 후 장기 유착 방지를 위해 수시로 걸어야 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용기 내 침대에서 첫 발을 떼는 순간 고통에 몸서리쳤다.

'으아악. 나 못 걷겠어.'



두 발로 자유롭게 걷는 일상은 감사한 일이었다. 과연 난 제대로 걷는 날이 오긴 올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걷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태어나 처음 느꼈다.



제왕 절개 수술 후 3일 정도 지나서 걸음은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혼자 일어나는 건 아직 어려운 일이었다. 걸음이 나아질수록 얼른 유방암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솟아올랐다.



마침 분만과 간호사 선생님께서 검사를 진행하겠냐고 물었다. 고민을 하다가 검사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 절개 수술 3일 만에 다시 금식했다.

피검사, CT, MRI

온종일 각종 검사를 하려면 휠체어로 이동이 필요했다. 다른 건 견딜만했다. 그러나 마지막 MRI는 포기하고 싶었다.



제왕 절개 한 부위를 닿으며 엎드렸다. 1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자세를 유지해야 했는데, 끔찍이 아파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도 잊기 힘든 순간이다.



힘들면 다음으로 미루라고 했다. 지금 와 회상하면 며칠 지나서 해도 됐겠다 싶지만 그땐 한시가 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작정 하겠다고 했다. MRI 검사가 끝나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검사는 끝났지만 자세 그대로 몸이 굳었다. 도움을 받아도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편까지 부르며 4명이 나를 안아 휠체어로 앉혔다. 순간순간이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뼈 검사 하나가 더 남았지만 웬만한 검사는 끝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주말에 분만실에서 유방 병동으로 이동했다. 분만실의 경우 보호자는 저녁이면 집에 가야 했다. 유방 병동실은 보호자 상주가 가능해서 자리를 이동했던 것이다. 남편의 케어 덕분에 저녁에 혼자 있던 시간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몸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조리원으로 이동했을 텐데, 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있을 텐데.

몸조리는커녕 몸을 더 혹사시키고 있는 현실에 자못 우울감이 크게 한 번씩 찾아왔다. 병원 밖 하늘을 보면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일부러 괜찮은 척 눈물을 닦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에 나를 위로했다.



CT와 MRI는 조형물을 넣기 때문에 아이의 모유수유도 포기했다. 모유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미역국을 피했고 압박붕대로 가슴을 동여맸다. 주말은 그렇게 우울하고 앞으로 닥칠 무서움과 함께 했다.



마지막 뼈 검사를 앞두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아가가 퇴원수속을 밟았다. 아이 맡길 곳이 필요해 미리 계약했던 조리원에서 아이만 맡되 내가 없는 대신 1주를 더 돌봐주기로 했다. 조리원 원장이 데리러 왔고, 아이를 안고 갈 보호자 역할로 친정엄마도 왔다. 친정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조만간 보자며 인사를 연신 하며 슬픔을 꾹 눌렀다. 아이를 보내자 눈에서 자꾸만 아이가 아른거렸다.



이후 마지막 관문, 뼈 검사를 진행했다.






드디어 교수 회진 시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겨드랑이 림프와 내유 림프(유방과 유방 중간 골)에 전이가 보인다는 소견이었다.



더하여 유방에 있는 혹의 크기도 무려 4.3cm이었고,

유방암 타입은 예후가 좋지 않은 '삼중음성'이었다.


[삼중음성이란?]

호르몬(ER, PR) , HER2 수용체가 모두 음성이라 수용체가 없다. 원인 불명이다.



유방암을 걸린 이유가 없다니.

이말은 즉슨 치료제도 불명확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족 친지 통틀어 유방암에 걸린 내력이 없으며 그래서 자궁 검사는 자주 했어도 유방은 소홀했다. 결국 스트레스와 연관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병의 근간은 스트레스가 주요한 요인이겠지.



기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3기 말'이라는 소견은 나의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그래도 타 장기까지 전이되지 않았다. 위험 직전 상황에 암이 발견되었다. 다행을 부르짖었다.



궁금한 점은 전문의를 통해서 들었다.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전문의에게 코치코치 물었다. 항암을 하고 줄어들면 기수는 바뀌는지, 유방암 3기 말 환자의 재발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겨드랑이 림프 조직 검사를 해서 겨드랑이 림프 전이가 아니라면 기수는 어떻게 되는지 기타 등등.



하얀 도화지 위라는 뜻을 의미하는 '타불라 라사'

나의 머릿속은 타불라 라사였다. 모든 것이 다 타버리고 사라져 백지가 되고 오로지 죽음과 연관된 두려움만이 남았다.






겨드랑이 림프 조직검사 결과까지 나왔다. 겨드랑이 림프 전이는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이다. 최종 내용으로 나는 유방암 3기초 , 삼중음성 판정을 받았다.



치료방향은 AT 6차 후 수술 및 방사선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을 하게 되면 병기가 또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선(先) 항암으로 암의 크기를 줄인 다음에 수술로 제거하는데, 항암의 효과가 좋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