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 대신 항암약

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by 유나시

나는 스스로를 가히 안타깝게 여기는, 이른바 자기 연민을 가슴에 하나 새겼다. 그것은 바로 산후조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후 조리원에서 틀어진 골반을 잡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지내는 2주 대신 항암을 마주해야만 했다. 당시 취사선택할 여유는 찾기 힘들었을뿐더러 내게는 언감생심이었다. 몸에 독소를 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소를 넣어야 하는 처지에 좌절과 낙담을 하며 자기 연민에 이르렀다.





나... 떨고 있니?



한편 내가 직접 암에 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알던 사람들 또는 그 사람들의 가족 중 누군가 암 투병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암은 내 주위에서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내 일은 아니라며 공감 능력이 떨어진 채로 살았음을 깨달았다. 아파본 사람들만이 상대를 공감하기 쉽다. 각자에게 암이 찾아온 연유만 다를 뿐 아픔이라는 커다란 둥근 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터놓다 보면 유독 더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먼저 겪어본 항암에 대한 조언은 시작 전부터 나를 오들오들 떨게 했다.




항암을 겪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맛이 없거나 음식 냄새만 맡아도 역겹다고 했다. 그러니 잘 챙겨 먹으라는 조언이 많았다. 어폐가 있었다. 못 먹겠는데 잘 먹으라니...

항암은 결국 먹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들었다.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의 크기를 줄이고 나서 수술합시다



그렇게 수술 전 항암 AT를 시작했다. 총 6회의 항암을 거친다. 기간을 추산해보니 3개월이다. 6번인데 3개월이란 기간이 나오는 이유는 3주 간격으로 주사를 투여하기 때문이다. 주사가 내 몸으로 주입되는 시간은 33시간, 이틀도 안 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부작용은 2주나 지속된다. 나머지 1주는 컨디션이 회복되는 시간을 가져야 하므로 3주 간격으로 주사를 맞게 되는 것이다.



나의 항암제를 조금 더 자세히 기재하자면

A는 아드리아마이신, T는 도세 탁솔이라는 항암제인데, 이 두 가지를 조합해서 AT가 되었다. A는 환우들 사이에서 일명 '빨간약'이라고 부른다. 이 약은 빛이 투과되면 안 되는 까닭에 갈색 봉지로 덮여있다. 그 안을 보면 주황에 가까운 색을 띤 항암제가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주황 약이 아니라 빨간약이라고 불렀다.



'빨간색은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접근 금지의 색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그 순간 빨간 마스크 괴담마저 떠올랐다. 빨강이라는 공통점이 연상되어서라기보다 '빨간약이 곧 너를 무너뜨릴 거야.' 하고 조소를 띈 얼굴이 빠르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한 약이 악랄한 암을 죽이기 위한 용도로 재사용되는 게 항암요법이라고 하니, 얼마나 어마 무시할까.


폐에 물이 차서 호흡에 이상 반응이 왔다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기미가 보이자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바로 항암을 시작했다. 부작용 방지약을 먼저 수액 한 후 정오경 항암을 주입했다. 2박 3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몸을 많이 움직이면 항암제가 제대로 주입되지 않고 샐까 봐 최대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누워만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힘들었다.



항암을 맞는 동안은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항암이 끝나는 날 새벽에 피검사로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를 확인했다.





백혈구와 호중구 그게 뭣이 중헌디..



백혈구는 신체를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담당한다. 호중구는 백혈구 중에서 감염 방지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백혈구는 면역계의 부모라면 호중구는 그 자식 중 한 명이다. 둘 다 신체에서 중요한 면역을 담당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수치 얘기로 돌아와 백혈구의 첫 수치는 7,100이었다. 백혈구 수치의 정상 범위는 4,000~10,000이기 때문에 7,100은 정상을 뜻한다. 몸의 컨디션이 썩 나쁘지 않았던 이유 또한 백혈구가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조금씩 몸이 구려졌다.





부작용,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뒷목이 뻣뻣하게 굳더니 근육통과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당장 섭취 거부반응은 없었는데 배가 살살 아팠다. 나는 병이 찾아오기 전부터 장염을 달고 살았고 급성 복부 통증도 잦았다. 항암을 하면 내 몸의 약한 부위부터 공격한다더니 그 말을 통감했다.



복부 통증은 점점 심해져 설사도 계속했다. 그 대안으로 복부 찜질을 하고 따듯한 물을 수시로 먹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오후 7시부터 잠들었다. 죽어 잤다. 다음날 아침식사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경직된 몸이 부작용까지 겹치니까 피곤했던 모양이다. 첫 항암이라 엄마가 하루 상주했는데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코도 심하게 골았다고 한다. 잠을 자고 나니 다시 컨디션은 회복한 듯 느꼈지만 백혈구는 뚝 떨어졌다. 정상수치를 벗어나 3,800이 나왔다.

젠장할. 젊은 게 무슨 소용이람. 젊은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라는 사람들의 말을 은근히 믿고 싶었나 보다. 감기 한번 잘 걸리지 않았으니 면역이 잘 버틸 거라고 자신한 내가 어리석어 보였다. 면역이 떨어져서 암이 찾아 온 것도 모르고.


구내염도 생겼다. 입안이 헐어서 밥 먹는 게 곤욕이었다. 계속 떨어지는 백혈구 수치로 인해 수치 주사를 맞아야 했다. 수치 주사는 일시적으로 백혈구를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속상했다.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다독였는데 내 몸은 생각보다 1차 항암부터 흔들렸다. 임신 기간 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못한 데다 출산 직후 바닥난 체력으로 항암 치료를 하니, 강철 로봇도 아니고 몸이 항암을 이겨내는 것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의 이름을 노래 부르며



1차부터 지독한 부작용을 견뎌내긴 했다. 1주간의 휴약기에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젊다는 무기도 항암 앞에서는 나약하다. 나이를 떠나 항암이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신체적 반응이 다르므로. 나는 산후조리 대신 항암을 한 여자라는 자기 연민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누적될 항암에 몸은 어쩌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만큼은 환한 빛을 쏜다.


암이 확 줄어들거라는 희망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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