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는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by 유나시

주사를 맞을 때면 눈을 질끈 감는다. 혹은 고개를 휙 돌려 주삿바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내게 선단 공포증(뾰족한 것을 보면 공포스러운 증상)은 없지만 유일무이 주사 바늘만큼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 중 하나다. 어렸을 적부터 주사가 그렇게 싫었다. 주사 맞기 싫다고 온갖 생떼와 고집을 부릴 줄 아는 아이였더라면, 어쩌면 멋대로 감정을 분출하고 화끈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됐으려나, 또 그랬다면 암은 찾아오지 않았으려나 싶다.



그러나 난, 떼쓰는 아이가 못되었다. 예방접종이 있는 어느 날들에, 엄마의 손을 잡고 마음과 달리 투정 한번 부리지 않으며 따라갔다. 얼핏 독감주사는 너무 무섭다고 했던 희미한 장면 하나만 떠오른다.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피할 수 있는 대로 피했으니까. 감기에 걸려 병원은 갈지언정 엉덩이 주사만큼은 맞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예방접종 또한 거의 맞지 않았다. 요리조리 피해 갔던 주사가 매운맛을 선사한다. 그동안 포인트 적립이라도 되었나 보다. 주사는 와르르 한꺼번에 몰려왔다. 수술할 때 묵직한 마취주사부터 3주마다 항암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뿐 아니라 수시로 피검사를 했다.



암에 걸린 초반만 해도 그럭저럭 주사에 대하여 극도의 불안은 없었다. 그저 주사를 투여할 때마다 스스로를 토닥이는 멘트를 속으로 되뇌며 '이번만 잘 넘어가 보자'하고 나름의 씩씩함으로 무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암 3회 차 정도가 됐을 무렵부터였다. 몸은 심각하게 축났다. 살아있는 시체 같았다. 혈관들은 꽁꽁 숨기 시작했다. 혈관이 숨바꼭질 놀이를 즐기자 그때부터 숨는 자와 숨는 자를 찾아야 하는 자의 팽팽한 대립구도가 펼쳐졌다.






한편 캄캄한 어둠이 드리운 어느 새벽 4시경,

간호사가 내 자리의 커튼을 드르륵 치며 침대 위 처치 등 스위치를 딸깍하고 켜며 선잠을 깨운다. 갑작스러운 환한 빛 쏘임에 게슴츠레 눈을 뜬다. 항암 부작용 중 하나로 불면증이 있었다. 가뜩이나 병원 침대가 불편해 몸을 뒤척거리며 자야 하는데 불면증까지 겹쳐 숙면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깜빡 깊은 잠이 들어도 조용한 새벽시간 간호사의 발걸음 사운드는 단박에 귀에 꽂혀 긴장감이 넘쳤고, 커튼 치는 소리에 어느새 잠은 달아난다.



새벽의 간호사는 피를 뽑는 드라큘라처럼 느껴졌다. 날카로운 이빨 대신 주사를 들고 오는 드라큘라. 이제 갓 드라큘라가 된 초보 간호사가 걸리는 날에는 두려움과 짜증이 공존했다. 그 간호사가 미운 게 아니라 상황이 한없이 미웠다. 초보 간호사는 내 팔을 여러 번 탁탁탁 두드리며 숨은 혈관을 찾다가 마침내 흐릿하게 보인 혈관을 보고 주사를 시도하다 그만 잘못 찌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다 못해 뾰족한 말투로 '아 진짜 아프다고요!!! 못하시겠으면 고참 간호사 불러주세요.'하고 말하곤 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모진 말 던지는 것을 어려워하던 나인데, 차라리 내가 참고 말지, 그냥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던 내가 몸이 아프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전부 미웠다. 그럼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던 건 아니지만 나를 아프게 했었으니 미운 감정을 배설하고 나면 그만 일 텐데, 난 또 지나고 나면 그 죄송하다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저분도 배우는 입장인데'하고.

그럼에도 배우는 입장의 대상이 내가 되는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또 싫고 또 미웠다. 그런 감정을 반복해야 하는 악순환은 내게 인내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처치 등 스위치를 다시 왼쪽 방향으로 딸깍 끄고 나가는 간호사의 뒷모습이 어슴푸레 해져야 박진감 넘쳤던 새벽 수혈 시간의 종료를 알리며 나의 심장박동수가 차츰 느릿해진다. 마음이 누그러지면 그제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긍정의 회로가 조금씩 되살아난다. 오늘 하루도 견딘 나를 장하다, 기특하다 무한 칭찬을 더하며 외친다.

'이제 몇 번 남지 않았어!'



주사는 어린 날의 나를 반영하듯, 여전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를 어른으로 만들게 한 것도 아이러니하게 주사였다. 간호사가 능숙히 주사를 잘 놓은 날도 중간에 꼭 혈관이 터져 다시 숨은 혈관을 찾는 일을 반복하거나 혈관을 찾다 찾다 못 찾아 손등, 팔목까지 내어주어야 했다. 피할 수 없지만 즐길 수도 없는 상황에 화가 한 번씩 욱 찾아오다가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하늘에 감사하고 내 몸에 감사하고 내 몸을 만들어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나를 지켜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며 응원하는 친구들까지 모두가 감사했다. 주사는 쓰지만 인내의 끝은 달았다. 모든 치료 과정이 끝나더라도 주사와 이별하기는 어렵다. 그저 주사를 조금은 따가운 친구로서 곁에 두며 순간의 아픔 그마저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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