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간호사의 말 한마디

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by 유나시


텅 비어있는 방 안, 구석 자리 한 여자가 있다. 무릎을 세워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으며 어두운 낯빛 얼굴을 묻고 웅크려 앉아있다. 방 안에는 가전도, 가구도 아무것도 없이 적막만이 그녀 곁에서 감돈다. 있는 거라곤 직사각형의 창문 하나. 구름 뒤에 가려진 햇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며 창문 사이로 어둠 속 한줄기 빛이 내려온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





위 모습은 어둠 속에 갇힌 내 모습을 글로서 풀어냈다. 그 한줄기 빛은 '말'이었다. 항암 6차 중 6차, 마지막 항암은 다시 회상해봐도 고통에 몸 부리 치던 그 순간이 생생해 여전히 팔에 오돌토돌 소름이 쫙 돋는다. 귀신만 등장하지 않았을 뿐, 난 공포 영화에서 겁에 질린 주인공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대로 멈춰라 ‘하고 모든 것이 정지 상태였다. 글쓰기는커녕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많아서 소화시키기가 버거웠을 정도다.


항암 그간의 추이를 지켜봤을 때, 면역 체계는 항암 투여한 날로부터 2주가 지나면 점진적으로 정상 회복한다. 물에 젖은 몸에서 볕에 바짝 마른 가벼운 몸이 되어 병원 침대를 내려와 사뿐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퇴원한다.

그러나 마지막 항암은 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었다.



기본 중의 기본을 잃었을 때, 삶 앞에 사람은 매우 겸손해졌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한순간 고꾸라질 때처럼, 무모했던 인간이 자연재해 앞에서 맥도 추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기본은 숨쉬기였다.


흔히들 말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

숨만 쉬어도, 그 숨만 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것일 수 있었구나, 하며 별 것 아니라 여겼던 말 조차도 신중해야 하는 것을 통찰했다.

대개 숨은 들이마시고 내뱉는 쉬운 일로 치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또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몸의 체계가 망가지면 그 숨이란 게 어렵다. 기본이 깨지니 유기적으로 연결된 곳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폐렴이 왔다. 기본이 무너지면 되돌리는 일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폐렴이 찾아오기 전부터 몸은 이상 반응을 일으켰다.




1. 수혈이 시급해


헤모글로빈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건강한 신체의 여자라면 수치의 정상 범위는 12 이상이다. 나는 6.9까지 떨어졌다. 수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자 피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때부터 전조 증상으로 호흡이 일정치 않았다.


결국 피를 공급받기로 했다. 난생처음 수혈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헌혈만 해봤지, 살면서 내가 위급환자가 될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러나 수혈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혈관 통증 때문에 악 소리를 질렀다. 못 맞겠다고 꺼이꺼이 울며, 통증 해소를 위해 간호사는 찜질팩을 가져왔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수혈할 위치를 다시 잡기로 했다. 주사를 잘 놓는 간호사 덕분에, 통증은 가라앉았다.



2. 급격히 상승한 염증 수치


간호사는 수시로 찾아와 염증 수치를 말해주었다. 이 또한 정상인이라면 기준 수치는 5 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난...


아직도 염증 수치가 110이에요. 며칠 전 133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떨어지지가 않네요... 항생제 개씩 계속 투입하고 우선 지켜보죠.’



3. 질 내부 감염까지


소변을 눌 때마다 따끔따끔거렸다. 항암 중에 늘 찾아오던 불청객 변비와 치질로 고생을 해서 대변만 신경 썼는데, 소변까지 말썽을 피우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대소변 모두 힘겨워 화장실을 갈 때마다 굳은 의지가 필요했지만, 항상 화장실 문 앞에 서면 기로에 놓였다. 눌까 말까?


산부인과 협진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질 내까지 균이 침범했다. 나의 출산을 도맡았던 여의사는 항암 중에 염증 수치가 올라가면 질 내 균이 쉽게 번식한다고 했다. 그렇게 누적된 항암은 몸 구석구석 장기를 망가뜨렸고 나는 견디질 못한 것이다.



4. 최악, 항암 중 유방에 암이 하나 더 생겨...


항암 3차와 6차 때 암의 크기가 얼마나 줄었는지 중간 점검을 했다. 3차에서는 1.1 cm가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동글한 암 녀석이 만져졌다.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니 6차에는 더 줄어들거라 가느다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충격적이었다. 휴가인 교수를 대신해 주치의가 와서 결과를 이야기했다. 줄어들지 않았다는 말은 예상했지만, 왼쪽 가슴 1시 방향에 암이 하나 더 보인다고...

화살 하나가 직선으로 날아와 내 가슴 중앙에 내리꽂는 것만 같았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 안타깝게도 암이 하나가 더 보입니다. 상피내암(아직 기저막을 지나 주변 조직으로 침범하지 못하고 상피조직 내에 머물러 있는 상태)으로 나왔어요. 왼쪽 가슴 1 방향이고 악성 등급입니다.'


멍하고 정신이 둔탁했다. 처음 암 진단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지나갔고 암을 물리치자고 독한 마음을 품었다. 그랬던 나인데, 암이 잘 줄어들지 않고 하나가 더 생긴 이 상황을 직면하기 어려웠다. 까닭 모를 설움이 닥치자 울보가 되었다. 첫 진단 때보다 훨씬 무서웠다. 젊다는 이유로 가장 독한 항암제를 썼는데 항암제를 꺾을 만큼 그보다 더 독한 암이 또 생겼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자꾸 따라와 생각을 없애주는 지우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계속 타일렀다. 양팔을 툭툭, 스스로 다독인다. 그러다가도 다시 정말, 너무, 무서워졌다. 주치의는 가고 한번 열린 눈물 꼭지를 잠그기 어려워 그저 우는 내 모습을 보며 항생제를 넣으러 온 간호사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무 속상하시죠.. 말이 지금 순간 도움이 안 수도 있지만 유나시님 같은 분들을 봐왔어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수술 전에 발견됐잖아요? 수술로 다 떼어 내면 되니까, 오히려 나중에 발견돼서 더 커지는 것보다 지금 떼어내는 낫다고 생각해보셔도 좋을 같아요. 이런 말 하면서 저도 속상하지만, 아플 때는 긍정적인 사람이 이기는 같아요.’

참 이상한 일이다. 간호사의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찬 바람에 마구 흔들리던 마음이 굳건해졌다. 나 아직 살아있잖아!


이어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그래.. 괜찮아. 악성 내가 이겨. 그리고 다행히 상피내암이고 수술로 떼내면 되잖아. 괜찮아.. 간호사님 말대로 수술 전에 발견된 도리어 행운이야.'


살면서 선택할 수 없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난제들이 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괴롭고 억울하고 분해서 살 수가 없을 테니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은 미래 일을 마치 지금 벌어진 상황인 양 미리 당겨와 착각을 하기 때문인데, 그럴 때는 눈앞에 놓인 숙제부터 하는 편이 낫다. 현재를 직시하면 지금 내 앞에는 염증 수치로 회복이 더딘 내 몸이 있다.


간호사의 말 한마디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살렸다. 하마터면 나의 몸을 원망하고 사랑할 수 없을 뻔했지만 나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4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