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그리하여 수술의 기로에서 유방외과와 흉부외과 수술이 동시에 병행되었다. 수술 전 찍은 흉부 CT 상 다행히 폐렴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학수고대하던 대망의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 당일.
자정 12시 이후부터 금식이었다. 제왕 절개 수술을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또다시 찾아온 수술 전 공포증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심란한 마음에도 때가 되면 배는 고프다. 꼬르 끄르륵..
일주일 굶은 것도 아닌데 고작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스멀스멀 배고픈 욕구가 올라왔다.
우리는 이렇게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스템 속에서 산다. 인생을 좀 더 누리고자 미래를 위해 수술하는데 몸은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밥 달라 아우성 거리는, 현재를 사랑하며 살자 하면서도 미래의 나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자 팽팽한 시간 줄다리기의 연속 같다.
간호사는 앞 타임의 수술이 빨리 끝날 것 같다며
오후 3-4시쯤이면 수술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연신 시계만 쳐다봤다. 오후 4시가 지나도 수술 들어간다는 말은 없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수술 들어갑니다'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반짝거리듯 들렸다. 뒤이어 이동 직원이 왔다. 그제야 꼬륵거리던 허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만이 남았다. 항암에 비하면 수술은 별 것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난 수술대에 오르는 것부터 무서웠다.
사람들은 제왕절개도 별거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땐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출산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여자가 산통을 겪으며 힘이란 힘은 모두 주고 애를 낳는 이른바 자연 분만만 떠올린다. 제왕 절개는 엄마 편하고자 하는 수술로 비친다는 건 사람들의 반응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내 소식을 모르는 지인들이 연락 왔을 때 '자연 분만했어?'라는 물음이 많았고, 제왕절개를 했다고 하면 왜냐고 물어봤으니까.
내게 특별한 상황이 되는 모든 것에는 별 것 아닌 건 없다. 그저 수술이 잘되고 회복되어 마음이 편해진 사람들이야 별 것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상황이 가정된다면 별 거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왕 절개를 위해 수술실로 들어간 당시 싸늘한 차가운 공기에 압도당했다. 온몸이 바르르 떨리며 추웠다. 불과 4개월 전 기억을 안고 있는데 잊기도 전에 또다시 오르는 수술대.
그 길에 내 곁을 함께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이동하며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지만 나의 생각하는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남편의 말소리 볼륨은 작아지며 수술이 있기 이틀 전 채혈 결과에서 면역과 관련 있는 백혈구와 호중구 숫자가 저조한 탓에 혹시나 봉합하면서 감염되진 않을까, 별의별 생각 볼륨들만 크게 들렸으므로.
드라마처럼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은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대기하고 있던 남편과의 재회를 생각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수술실 앞 의자를 모두 없앴다. 보호자는 병실에서 대기해야 했고 수술이 끝나면 문자가 온다고 했다. 보호자는 서명하고 올라가야만 했다.
코로나는 감동까지 함께 없앴다. 우린 그렇게 수술실 문이 닫힐 때까지 손 인사로 대신했다.
지이잉 (자동문 닫히는 소리)
문이 닫히며 바로 수술방인 줄 알았지만 대기 줄이었다. 제왕 절개를 했던 병원과는 달리 환한 조명, 잔잔하게 퍼지는 노랫소리, 따듯하게 데운 담요로 아늑했다.
뻣뻣이 굳은 몸이 그 덕분에 조금씩 풀리며 스스로 아낌없는 칭찬을 베푸는 것이 가능했다.
‘정말 괜찮아. 지금까지 너무 잘했으니 수술도 잘될 거야. 넌 너무 대단해.’
이윽고 수술실 문이 열렸다. 얼어붙은 환자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 수술실 안은 춥지 않았고 밝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충분했다.
뒤이어 들어온 교수님은 차분한 톤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잠깐 눈 감았다 뜨면 수술은 잘 끝나 있을 거예요.’
따듯한 교수님의 말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하루 종일 많은 수술 하시느라 힘드셨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과정을 거친 끝에 수술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나 보다.
하나, 둘, 셋
잠시동안 그렇게 나의 기억은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