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수술 (1편)

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by 유나시

하나, 둘, 셋.

수술실 안, 마취로 한순간 기억 일시 정지 버튼이 켜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흰이슬님, 일어나세요!‘


동굴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힘센 자가 발로 펑!

하고 동굴 밖으로 걷어찬 느낌이었다. 눈을 떴다. 회복실이었다. 수술을 마친 환자들이 베드에 누운 채 나란히 줄지어있다는 것을 소리만으로 금방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진통제 놔달라고 아우성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만.






숨 고를 새 없던 시간도 결국 지나 항암 고개를 넘었다. 나의 생체도 여러 변화에 대응하며 정상 회복했다. 염증 수치가 확 가라앉고 폐렴도 가셨다. 있는 힘껏 버텨낸 나는 항암을 마친 이후부터 전폭적으로 나를 믿기 시작했다.



비록 항암 시작 당시의 다짐과 희망을 이루지는 못했을지라도, 마지막 항암까지 꼿꼿이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발라당 넘어졌을지라도, 때마다 스스로가 지지자가 되어 격려와 위로로 조력했다. 다른 편에 암이 하나 더 생겼고, 기존 암 크기 또한 확 줄어들지 않았으며(4.3cm → 3.2cm) 유방과 유방 사이 림프로 전이된 암은 그대로였지만, 온 장기로 퍼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주 만물에 계신 신께 감사했다. 드디어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행여 수술을 할 수 없을까 봐, '제발, 수술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하고 매일같이 기도했다. 피검사를 통해 수치가 점차 회복되는 것을 보고 교수는 수술하자고 했다. 생애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2022년 1월 18일 외래진료, 1월 19일 입원, 1월 20일 수술로 3일 연달은 스케줄로 나의 행동은 촉박했다. 사람의 마음은 그 순간에도 간사하다. 갑자기 두 개의 마음이 공존했다. 수술대 오르기 전 겁나는 마음과 드디어 '나 수술한다'는 속 시원한 마음이 서로 뒤엉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자가 단연 압승이다.





입원 당일 저녁, 교수가 내 병실로 올라왔다. 교수는 으레 당연하다는 듯 수술 일정부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도 했는데 항암까지 받느라 그간 수고가 많았다며 마음의 위로부터 건네주었다. 나에게 인복까지 주어지다니!



한편, 남편은 어떤 무언가가 해결되지 않으면 붙잡고 놓지 않는 다소 촘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유 림프 전이에 대한 수술 이야기가 교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유 림프란, 유방과 유방 사이, 그 골 즈음 부위다. 이쪽은 갈비뼈를 개복 후 수술을 해야 하는 만큼 어려운 수술에 속하여 유방외과가 아닌 흉부외과 수술 소관이기도 하다.



내유 림프 부위가 항암으로 없어졌으면 했으나,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남편은 특히 내유 림프를 따라 타 장기로 퍼질까 늘 이 부위를 경계하고 불안해했다. 잠시 나의 상황을 언급하자면, 항암은 근처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하고 수술은 일명 서울에 있는 메이저 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병원을 바꾸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유 림프 수술은 대형병원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항암 중에 수술할 병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렇게 병원을 옮겼는데 명확하게 내유 림프, 이 부위의 수술 여부가 수술 전일까지 결정되지 않자 남편은 교수가 올라왔을 때 물었다.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머리 복잡한 나를 대신해 남편이 신경을 곤두서고 있었다.



‘교수님, 와이프 내유 림프 전이는 어떻게 되는지요?

얄팍한 지식이지만 방사선 치료는 암이 완전히 없는 상태에서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 정도로 알고 있어서요. 내유 림프 전이암은 수술 못하는 건가요?’



남편이 입을 뗀 김에 그제야 나도 궁금했던 내용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항암 받은 병원에서는 내유 림프 쪽 암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여기 병원에서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서요. 혹시 차이 나는 이유도 알 수 있을까요?’



교수는 확인하고 다시 올라오시겠다고 했다.



- 1시간 후 -


교수는 남편의 말대로 내유 림프 전이암은 방사선 치료로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 흉부외과에 바로 요청해서 동시 수술을 조인해놨다고 했다. 대신 두 번째 수술에서 마지막 타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마지막 순서로 진행해야 다음 수술시간에 쫓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게 마음이 놓였다. 내유 림프 전이암도 수술만 할 수 있다면야 마지막 순서 따위 개의치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큰 병원에서 수술하라는 말이 이런 때 착착착 진행되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급히 부탁한 요청에도 흉부외과 교수가 오케이 사인을 하며 순조롭게 가동되는 시스템. 병원을 바꾼 일도 나 참 잘했구나?



이어 남편은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와이프가 제왕절개 수술하고 며칠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항암을 시작했어요. 고생을 무척 했는데, 수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울컥했다. 세상에 당연한 말과 행동이 있을까. 없다. 나를 위해 계속해서 예민하게 신경 쓰고 고개를 숙이며 최대한 나의 마음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우주 만물의 신은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단단함도 함께 주시나 보다.


그리고 마침내 진격의 수술이 다음날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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