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까짓 거 안녕

유방암을 극복하는 30대의 어느 여자 이야기

by 유나시

1차 항암이 끝나고 정확히 14일이 지나자 머리카락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나를 떠나가기 위해 하루하루 격렬히 반응했다. 숭덩숭덩 빠진다. 거부할 수만 있다면 당장 그 찬스를 쓰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탈모를 피할 수 있을 거야'하는 특별한 생각도 하지만, 유방암 관련 책에서 항암 중 탈모 부작용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100% 라는 문장을 보고 특별한 생각을 접었다.



한편 나는 신체 콤플렉스 중 가장 예민했던 부위가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원체 숱이 적고 힘이 없는 모에 돈을 많이 부었다. 30만 원짜리 파마부터 200만 원 두피 케어 회원권까지.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나였다. 신은 내게 이제 그만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듯 탈모를 선사했다.



방바닥 사방천지에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줍기 바빴다. 무릎을 구부려 청소용 스티커로 머리카락을 접착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니 적잖이 당황스럽고 애가 탔다. 민머리 내 모습을 상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려니 우왕좌왕이었다.

'가발부터 해야 하나? 쉐이빙부터 하고 가발은 나중에 할까? 아니야. 그냥 놔둘까? 빠지다 말수도 있잖아?'



그래도 가발이 필요할 것 같아 여러 업체를 비교했다.

가격은 천차만별. 가성비를 따질지, 돈을 주고 투자할지 고민 끝에 역시 나는 머리카락에 대한 질긴 인연을 놓지 못하고 비싼 가발에 돈을 투자하기로 마음을 기울였다.



남편과 함께 샵에 갔다. 방문 첫날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빠질 만큼 빠져서 듬성듬성 해진 머리가 꼴 보기 싫었다. 보기 흉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소중한 머리카락을 내려놓지 못했다. 밀지 않고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단발이라서 그런지 탈모 과정에서 두피 땡김이나 머리카락 엉킴은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밀지 않으려고 더욱이 용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가발부터 맞췄다. 쉐이빙을 목전에 두고 고민하자 쉐이빙은 며칠 뒤에 해도 된다는 말에 가발만 맞췄다. 최대한 지금의 모습과 가장 유사하도록 짧은 길이의 가발을 선택하고 내 두상에 맞게 손질을 했다. 원하는 머리 스타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현재 내 머리랑 가장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바꾸기로 했다.



가발 디자이너는 말했다. 아마 며칠 내 머리카락은 더 많이 빠질 거라고, 쉐이빙 할 것을 조심스럽게 넌지시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그러나 쉐이빙을 해도 아주 짧은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빠진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아이 입으로 들어가거나 옷 사이사이에 박힐 수도 있는 점도 함께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쉐이빙 전 방바닥에 떨어진 눈에 훤히 보이는 머리카락을 유지하다가 친정에 아이를 맡긴 후 쉐이빙을 해볼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만 했다가 가발을 맞추고 온 다음날부터 머리카락은 솜뭉치처럼 더 빠지기 시작했다. 골룸이 되어갔다. 빠지는 머리카락과 안 빠진 머리카락이 뒤엉켜 누가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두피 땡김이 오기 시작했다. 결국 가발 디자이너 말처럼 쉐이빙을 택해야만 했다.



'여보 나 그냥 쉐이빙 해야겠다'

'그래, 당신은 머리 밀어도 이쁠 거야, 그 외모가 어디가?'



말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자존감이 남편 말 한마디로 인해 생기가 돌았다. 미리 예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남편의 말에 은근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쉐이빙 3일 전,

개수대, 밑반찬 통, 화장실 변기, 아이 이불, 옷 등등

보이는 곳 전부 내 머리카락이었다. 위생적으로도 견딜 수 없어 쉐이빙의 필요성을 느꼈다.




쉐이빙 당일,

결연한 마음에 더 이상 머리카락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덤덤했다. 결정은 후회를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앞으로의 향방만 생길 뿐이다.



쉐이빙의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다. 훗날을 추억하기 위해. 쉐이빙이 끝나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엇, 나 생각보다 이쁜데?'

평소 툭 튀어나온 이마가 이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의 이마가 이런 순간 유용하게 작용할 줄이야.



다듬어진 가발을 착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그날 바로 가발을 착용을 하고 곧장 이마트 쇼핑을 하러 갔다. 갑자기 많아진 내 머리숱이 낯설어 연신 거울을 쳐다보기 바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힐끔힐끔. 여전히 남들 시선에 신경을 썼다. 그런 소비자 마음을 업체는 예리하게 파악했다. 가발 쇼핑백 외관에 아무런 글자도 쓰여있지 않았다.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모르도록 종이백에 센스를 더했다. 종이 쇼핑백 덕분에 '남들이 내 속사정을 알던 말던 지금을 즐기자'라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다.

내 삶에 집중하는 것도 벅찬데 타인에게 머무르는 시선에 대한 스위치를 딸깍 껐다.



나는 잠시 숱 많고 다양한 스타일링 가능한 가발을 즐겨보기로 했다. 과거에 뱅 스타일 앞머리를 하면 이마에 딱 달라붙어 맘에 들지 않았는데 가발은 고정도 잘 되고 반 묶음을 해도 예뻤다. 가발을 벗으면 다시 민머리가 되는 이중적인 모습에 가끔 여자로서 움츠려 드는 순간은 있을지라도 예뻐 보이면 됐지!


머리카락, 까짓 거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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