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부터 하자

제왕절개를 선택해야 했던 이유

by 유나시


대학 병원 외래 진료일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외래진료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가서 어떤 말을 듣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 외래 진료 당일.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인의 시선에 은근히 신경 쓰며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들을 관찰하듯 의식했다.


'젊은 얼굴을 띈 사람은 거의 내가 유일무이한데 더군다나 임신 중 상태는 나 한 명이네.'


처음으로 소수가 된 낯선 기분. 암은 부모님 연세 즈음 찾아 올 거란 일반적 사고에서 벗어나 젊은 사람이 암에 걸린 것도 소수자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차례가 다가와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전에 첫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조직검사결과지와 CD를 받아와 접수를 미리 해두었다. 교수는 침대에 누워보라 했다. 손으로 악성 종양이 있는 부위를 만졌고 크기를 대략 가늠했다. 4cm가량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교수는 아이부터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산부인과 진료 먼저 보고 출산 후 유방암 정밀 검사를 진행하고 치료를 결정하기로 했다. 남편은 여기 대학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면 유방암 정밀 검사를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기존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분만 예약을 취소했다.




출산 예정일은 3일 뒤 즈음이었지만 제왕 절개로 마음을 먹었기에 그날 곧장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를 만났다. 교수님은 초음파 상 아이가 건강하며 첫 아이니까 자연분만을 권유했다. 고민했다. 유도 분만을 물었으나 초산이고 아직 예정일이 3일 정도 남아서 당장 유도분만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유도분만이 실패로 돌아가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더 이상 분만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제왕절개로 결정했다. 다음날 오전, 수술 날짜를 잡았다. 굳이 자연분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들 하지만 그 당시 자연분만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곧장 분만실 입원 수속을 밟았다. 저녁에 제왕절개 수술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누가 제왕 절개는 눈뜨고 일어나면 애 낳는 거라 별 것 아니라고 하던가.


순 거짓말. 무서움이 엄습했다.


오전으로 잡혔던 수술이 다른 수술로 인해 뒤로 밀려나면서 결국 오후 1시쯤 제왕 절개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전날 밤 수술 전 주의사항에 대하여 들었다. 주의사항만 놓고 보면 제왕절개를 하면 안 될 정도였다. 의사는 예측 불가능한 사항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지만 확률상 암도 걸렸는데 수술 후 잘못될 확률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남편과 주의사항을 다 듣고 동의는 했지만 의사가 돌아간 뒤 잘못될까 봐 벌벌 떨었다.


수술 시간이 다가와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남편에게 쿨하게 손인사를 나눴다. 둘 다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문이 닫히고 나니 남편이 옆에 없다는 것에 대한 허전함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수술실은 춥기까지 해 마음은 더 꽁꽁 얼어붙었다.


하반신 마취는 척추를 통해 마취주사를 주입한다. 만약 내 척추가 이상 있을 시 전신마취로 전환하는데, 2방이나 실패했다. 정말, 많이, 아팠다. 두 번 더 시도해 보고 안되면 전신으로 하시겠다고. 세 번째 척추마취를 넣는 순간 악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하반신 쪽이 뜨끈뜨끈해졌다. 마취가 잘 들었다. 수술 과정은 초록색 가림막으로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의사와 그 곁을 돕는 간호사들의 말소리는 생생하게 들린다.



덜컹덜컹. 장기들을 조몰락거리는 듯했다.

'장기 옆으로 옮기고 자궁 그 아래로 좀 도와줘요.'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나오자마자 울지 않았고 등을 토닥이자 그제서 응애응애 소리를 토했다.


내 아가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평생 모를 감정이었다. 아쉽게도 아이를 안아볼 수 없었다. 얼굴만 몇 초 보고 남편이 있는 바깥으로 보냈다. 봉합하는 과정에서 위장 부위에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픔이 느껴진다고 하니 전신 마취 투입.

기 - 절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제왕 절개의 단점은 회복이 늦다는 점이다. 그 점 때문에 바로 걸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진통제를 계속 투여하면서 수술 후 당일은 누워만 있었다. 소변줄도 끼여있었다. 출산 전 제왕절개 관련 영상을 시청했어서 수술 이후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본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거동이 어려운데 몸을 계속 움직이라니! 불편하고 아프기 짝이 없다.


출산의 고통도 잠시, 나의 머리 한편에는 암 추가 검사들을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산후조리는 이미 포기했다. 그저 제왕 절개 이후 남들보다 빨리 회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수술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CT와 MRI로 다시 내 몸을 혹사해야 한다. 암이 퍼질 것 같았다. 몸을 혹사키더라도 선택지가 없었다.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데 내 마음만 조급하여, 흐르는 대로 맡기지 못하고 시간을 장대 뛰기처럼 훌쩍 뛰어넘어 혼자 급하게 뛰어가려고 했던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무사히 출산했다. 장기 유착 방지를 위해 걷고 열심히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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