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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Jan 10. 2024

겨울나무가 더 이상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에 단상 한 개씩만 쌓여도


  오늘은 저쪽 길로 가볼까? 하는 호기심이 웬만해서 들지 않는 성향이기에 산에 오를 때면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항상 같은 방향으로 오른다. 정해진 지점까지 삼십여분의 시간이 소요되고 거기엔 정자 하나가 우두커니 있다. 저 멀리 아파트 풍경과는 대비되는 교태 있는 정자 사이로 바람이 자유롭게 넘나 든다. 요깃거리를 챙겨 온 이들이 정자에 삼삼오오 자주 모여들어 나는 멀찍이 떨어진 벤치에 앉기 다반사지만 벤치도 좋다.



  그 벤치에 앉아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노라면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의 모습도 한눈에 훤히 바라볼 수 있다. 휴대폰 속 작은 화면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나무들의 실사 구경이 가능한 곳이다. 지금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무들. 겨울이라는 계절 인연을 또다시 만난 나무들이 단순히 추워 보인다, 차가워 보인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한날은 ‘어라, 여기 나무들의 개수가 이리도 많았네?’ , ‘가지만 남은 나무들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니 이 산이 이리도 컸었네?’ 하며 마치 처음 와본 사람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곤 나무들 가운데로 난 길을 걸어 다니는 등산객이 분명하게 보였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더 또렷하게 보이도록 하는 겨울나무가 더 이상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암과 함께 살아내야만 하는 길을 선명하게 밝혀준다. 매 순간 흔들리며 살겠지만 헤매지 말라고, 뚜렷한 마음 품고 살라고 나무가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난 그날 그 길을 따라 산을 좀 더 올랐다.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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