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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Jun 12. 2022

당신은 당신을 위로할 필요가 있다.

하늘이 주는 <절정>








 나에겐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어딜 갈 때든, 나는 습관적으로 고갤 올려 하늘을 본다. 심지어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조차 나도 모르게 우산 너머의 하늘을 본다. 어느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언젠가 소설 글귀에서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하늘을 자주 보려고 합니다"하는 누군가의 말을 인상깊게 보았던 장면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봤던 게 언제였던가"하며 메마른 내 감성을 되짚곤 했다. 굳이 계기를 찾자 한다면 그때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흔히 '영화 같은 삶'을 선망한다. 뮤지컬 영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운명적으로 눈 앞에 펼쳐지고, 귓가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었던 감동스러운 음악이 들리고, 옆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지금 당장 죽어도 될 만큼 행복하다. 사람들은 흔히 이러한 영화 속 주인공의 삶과 감정에 제 현실을 비교하며 낮추곤 한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선망한다. 디즈니 영화처럼 아름다운 BGM으로 가득한 인생. 비록 어려운 굴곡이 있다고 하여도 놀라우리만큼 대단한 힘으로 스스로 극복하고 버텨내다, 마침내 아름다운 노을 앞에서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며 미소 짓는 인생 말이다. 생각만해도 행복하고 감동스럽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러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안다. 영화는 아름다운 장면만을 압축하고 강조하여 만든 한마디로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극치'를 극적으로 담아놓은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과 인생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현실 속에 있고 예술 작품은 그저 작품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 평소처럼 운동을 마친 후 오늘의 하늘을 보던 나는 문득 '영화 같은 삶'의 의의에 대해 사색했다. 오늘따라 유독 더욱더 아름답게 미소 짓고 있는 하늘의 얼굴을 보자마자 떠올랐던 말은 바로 '영화 같은 삶'이라는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늘 어려움과 고독함을 겪지만 끝끝내 승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여생을 즐긴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고, 남들이 말하는 '영화 같은 삶'이란 바로 그런 영화를 뜻할 것이다. 주인공이 죽거나 쓸쓸하게 자살하는 암울한 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우여곡절의 절정만을 인위적으로 강조하여 요약해놓은 영화를 보며 우리는 부러움을 느끼고 또 웃으며 눈물 흘린다. 만들어진 가상의 인간에게 우리가 그토록 감정의 동요를 느끼며 울고 웃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크게 다를 것 없다고 느끼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그들의 삶을 선망하는 것일지 모른다. 정확히는, 그들 삶의 '아름다운 장면들만' 말이다.


 하지만 현실과 예술 작품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이든 결국 모든 것은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극적으로 담아놓은 바구니일 뿐이다. 현실은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은 곧 현실이 된다. 오히려 현실은 예술보다도 더 비극적이고 기적적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오늘 내 곁을 지나갔던 모르는 사람1, 모르는 사람2의 삶을 찬찬히 시나리오 형식으로 만들어 본다면 그것 역시 예술일 것이다. 나의 인생과 당신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은 그러한 삶을 몇 시간으로 요약해놓은, 조금 더 예쁘게 꾸민 바구니일 뿐 우리 모두 그러한 예술 작품을 직접 꾸리고 그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어코 명심해야만 한다.


 오늘 하늘을 보며 나는 그러한 '영화 같은 삶'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모두가 영화 속 아름다움을 보며 "내 현실은 왜 이럴까"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하늘과 눈맞춤하며 아주 잠시나마, 내가 보았던 아름다운 영화들 속의 <절정>을 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삶을 살며 그러한 <절정>을 느낀 적 있었을 것이다. 이 <절정>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며 느끼는 수많은 감정의 오르가슴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교류. 경이로운 자연 풍경을 보며 절로 나오는 눈물. 기적적인 성공을 이루었을 때 극도로 치솟는 카타르시스. 우리가 선망하는 '영화'는 그러한 <절정>의 장면들을 함축적으로 요약했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여 만든 것이다. 그 말은 즉-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살로 직접 느껴왔던 우리들의 <절정>을 영화로 통해 다시 한번 보고- 그를 그리워하며, 부러워한단 것이다.


 영화 속의 아름다운 그 무엇들 역시 그러나 한 인간의 스케치에 불과한 법이다. 주인공의 희노애락. 주인공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 처절하고도 비굴하며 그렇기에 찬란한 장면. 그것들 또한 우리들의 삶에서 분명 스쳐간 적 있었던 <절정>일 것이다. 운동을 끝낸 후 산책을 위해 집을 나온 나는 나무 이파리로 우거진 코너를 돌자마자 내 눈을 적시던 노을을 보며 바로 그러한 <절정>을 보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길을 걷다 코너를 돌자마자 나를 환영해주고 위로해주는듯 세상을 붉게 적신 하늘이 바로 그 <절정>이다. 대단한 것은 없다. 노을, 하늘, 그뿐이다.



듣고 있던 음악은 정재형의 'Andante' 였다. 완벽한 선곡이었다.



 마침 이어폰 너머 들리던 고요한 피아노 소리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을 수놓은 하늘. 색색, 자그마한 바람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전진하는 구름. 각자의 삶을 살며 각자의 시나리오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순간 내 시야에서 하나 되어 영화 속의 '시퀀스'로 탄생되는 빅뱅의 찰나를 보았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직접적으로 삶에서 겪는 모든 우연이 영화 그 자체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암울하고 어두운 듯한 이 현실은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는 '영화 같은 삶'보다도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며 절절할 것이라고, 하늘을 마주한 채 우두커니 서있었던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연분홍빛 노을과 구름 아래 선선히 부는 바람은 피아노 선율 하나로 순식간에 영화가 되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깡통 또한 순식간에 내 영화 속의 미장셴이 되어 시야 속의 시퀀스에서 하나의 역할을 차지한다. 찬란한 노을과 너무나도 완벽히 어울리던 노래를 들으니, 순식간에 나는 그러한 <절정>에 빠져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우습게도 나는 하늘을 보며 웃음 지었다.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 중 하늘을 보며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실히 하고픈 말이 떠올랐다.


'영화 같은 삶'을 선망하며 내 삶을 비교하지 말고,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당신의 현실을 잠깐 멈추고, 하늘을 보라고.


 노래와 하늘, 그뿐이면 된다. 더 이상의 준비물은 필요 없다.

모두가 각자의 목적으로 바삐 움직일 길가에 멈춰서서 하늘을 보고, 당신 삶을 찬란하게 해주는 노래를 듣자. 위로가 필요한 우리는 모두 삶에서 아주 잠깐의 여유를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음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삶에서 조금만  낭만을 느낄 필요가 있다. 영화 속의 대단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주인공조차 필요하지 않다.


 조금만 더 느린 시선, 느린 걸음, 음악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면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점마저 영화의 미장센이 되고 살아 숨쉬는 '무언가'가 될 것이니. 아무렇게나 버려진 물건과 깡통마저 바삐 움직이는 우리들처럼 각자의 사연과 삶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무겁고 처절하게만 느껴지던 당신의 삶이 조금은 더 '살 법 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니.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며 하늘의 표정을 보자. 그에 어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그저 하늘을 감상하자. 그렇다면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독한 삶과 현실에 치여 숨쉴 틈도 없었던 당신의 주변이, 순식간에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변하는 기적을 볼 것이다. 나는 내가 그토록 선망하던 영화 속의 누군가가 되어 아주 몇 초간의 시간 동안 짧은 <절정>을 느낄 것이다. 그 몇 초의 찰나는 모이고 모여 꾸러미로 묶여, 내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기억들로 살아숨쉴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절박하게 깎아지고 무뎌졌던 내 삶은 나를 위로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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