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포르투갈의 부잣집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는 것은 내 오래된 취미다.
하와이 대저택이라는 유튜버(작가)는
하와이에 대저택을 짓고 사는 것을 목표로 노력했고,
결국 그 목표를 이룰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집을 상상하는 것은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내 상상의 집에는 부드러운 잔디가 깔린 중정이 있다.
그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
새하얀 노출 콘크리트가 둘러싸고,
멀리서 보면 작은 성 같다.
1층은 네 면이 부엌, 서재, 거실, 침실.
모두 통창으로 중정을 바라본다.
서재에는 책 수백 권, 종이 냄새와 커피 향.
거실과 침실은 경계가 없다.
“집인가, 숲인가.”
잠시 쉬어가는 기분이다.
2층은 아이들 방과 취미방.
발코니는 중정과 바깥으로 모두 열려 있다.
취미방엔 홈짐, 플레이스테이션, 탁구대.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질 게 뻔하다.
저녁 무렵엔 창문 활짝 연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아이스티를 들고 발코니에 서서
아이에게 별자리를 알려준다.
그러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진짜 찐 부자의 집을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 신트라의 헤갈레이라를 보며
내 상상은 산산이 깨졌다.
내 꿈의 집이 순식간에 소박한 원룸처럼 보였달까.
그의 집은 단순한 집을 넘어,
공간에 철학을 담고 있었다.
매슬로우가 주장한 인간의 욕구 5단계를
집에서 연관 지어본다면
나는 4단계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1. 생리적 욕구
- 누울 자리만 있으면 되지(군대 혹한기 훈련 당시)
2. 안전 욕구
- 그래도 안전한 울타리라도 있으면
(기숙사에서 쫓겨나 노숙하던 1주일)
3. 사회적 욕구
- 반지하에서 벗어나고 싶다.(반지하 고시생 시절)
4. 존경 욕구
- 중정이 있는 노출콘크리트 집!(지금)
그러나, 내가 방문한 헤갈레이라에는
이를 넘어 5단계에 이르렀다.
그의 집에는 철학이 담겨있다.
<5단계: 자아실현 욕구: 집에 내 삶의 철학을 담는다>
"헤갈레이라는 단순한 귀족 별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여정인, 무지에서 진리,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극장 같은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주인 카르발류 몬테이루의 세계관이 농축된
“상징의 집합체”이다.
겉모습은 고딕·르네상스·마누엘 양식이 섞인
화려한 건축물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철학적·종교적 의미가 숨어 있다.
지하로 이어지는 우물은 죽음, 부활, 깨달음을 향한
여정을 체험시킨다.
동굴과 터널, 정원과 분수를 오가도록 설계되어
지하와 천상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건물 곳곳에 신화적 문양을 새겨,
개인적인 깨달음과 비밀스러운 지식 등을 과시한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면서 관광하고 싶다면,
투어를 강력추천한다.)
드디어 찾았다. 초콜릿잔에 주는 체리주.
헤겔레이라에서 조금만 빠져나오면 작은 마을이 있다.
이것저것 기념품도 팔고 음식도 판다.
특히 초콜릿잔에 주는 체리주를 파는 곳이 있었다.
포르투갈 여행할 때 동전 챙기는 것은 필수!
체리주가 있으면 한 번씩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에그타르트 다음으로 맛있던 디저트(?)였다.
초콜릿잔에 주니 쓰레기도 없고
별도 안주도 필요 없다.
정말 기발하다. 맛도 좋고 기분도 좋아진다.
바로 옆에 신트라 궁전이 있다.
건물 외부에서 보면 그냥 지나칠법한 곳이다.
초기에는 무어인 건축 양식,
이후 고딕·마누엘린·르네상스 양식이 덧입혀진
‘건축 박물관’ 같은 곳이라는데
헤겔레이라를 보고 와서 그런지 엄청 큰 감동은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부가 엄청나게 웅장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지쳐서 들어가진 않았지만
구글링 해보니 한번 들어가 볼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파리퀴타라는 패스트리 빵이다.
이곳의 대표 빵이라고 한다.
어딜 가나 대표 빵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아, 우리나라가 이것을 따라한 걸까?)
아무튼, 맛이 특색 있지는 않았다.
다만 헤겔레이라에 뭔가 기를 가득 빨려서
이걸 먹으니 좀 살 것 같긴 했다..
1호점 2호점 모두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이왕이면 1호점을 방문했다.
7월에 엄청나게 바쁘고 힘든 곳으로 인사이동됐다.
그래서 지난 내 여행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다시 좀 돌아보며 삶의 활력을 찾아야겠다.
다음은 어디를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