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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숲 속의 롯데월드, 아니 페나성

#21. 포르투갈의 궁전

by 라헤

숲 속의 테마파크 같은 곳이다.

해발 약 500m 고지에는 디즈니에서나 보던 진짜 성, 아니 궁전이라고 해야 하나?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칠해진 '페나성 (Palácio Nacional da Pena)'이 있다.


도착해서 올려다보면 진짜 놀이공원 같은 곳이 보인다.

특이한 게 '90년대에 만들어진 놀이공원'이라고 생각하면 참 별로고,

'1800년대에 만들어진 궁전'이라고 생각하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궁전은 아니었다.

원래는 중세 수도원이었던 장소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해 보리암 같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수행하면 잘될 것 같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풍경 좋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수도원 위치를 잡았으려나.


1838년 포르투갈의 왕비 남편이자 왕족인 Ferdinand II of Portugal가 폐허가 된 수도원을 매입했고,

1842년부터 1854년까지 현재 형태의 궁전을 건축했다.

이 행위는 훗날 포르투갈 관광산업 부흥에 큰 기여 했다.

현재 이 궁전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이자 또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후손들을 위한 부동산 투자를 기가 막히게 한 셈이다.

산위의 롯데월드,, 가 아닌 페나성



외벽의 타일이 빛난다.

포르투갈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짙은 안개 등 해양성 기후로 인해 습도가 높다.

그래서 외벽에 타일(‘아줄레주’)을 붙여 건물을 보호한다고 한다.

물론 타일을 붙이는 이유는 이뿐만 아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내부 인테리어로 사용하던 타일이

17세기 이후 외벽 전체를 덮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여기 페나성 외벽의 타일은 유독 더 반짝인다.

돈 냄새가 난다고 해야 할까.

왕실에서 개축한 건축물답게, 3층 건물까지 빼곡히 채워진 파란색 타일은 대서양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건물을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과 함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파란 하늘과 함께 반짝이는 파란 아줄레주

조각의 디테일도 엄청나다.

궁전의 입구라고도 할 수 있는 트리톤의 테라스(Triton's Terrace)는 조각 장식의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다.

반인반어의 신화적 존재인 트리톤과 눈을 마주치다 보면 쫄아서 눈을 깔게 되는데

그때 보이는 것이 산호 조각이다. 그 옆을 받치고 있는 조개 조각도 귀엽다.


다만 산호가 너무 디테일하고 빼곡하게 박혀있어서

환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유의해서 봐야 한다.(나 포함)

꿈에 나올 것 같은 트리톤과,

거기서 눈을 피한 곳에는 환공포증을 유발하는 조각이 있으니,

나는 이 유명한 테라스를 오랫동안 쳐다보진 못했다. 섬세한 만큼 아주 징그럽다.

매서운 트리톤과 그 밑의 징그러운 산호초들

환공포증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전체를 보지 않고 하나를 집중해서 보는 것이다. 숲이 아닌 나무를 봐라!

전체가 보이지 않아 조금 덜 징그럽다. 덕분에 조각의 디테일도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었다.

일석이조다. 덕분에 나뭇잎과 열매를 섬세하게 표현한 것도 캐치해낼 수 있었다.

환공포증이 생길 땐 한개를 자세히 바라보기

타일의 그림이 조금씩 다르다.

설마 이것을 다 하나하나 다 그렸을까?

거푸집으로 모양 틀은 찍을 수 있었겠지만 색까지 복사하진 못했을 테니 다 그렸겠지?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노가다의 흔적이다.

이 작업을 한 분께 고생하셨다는 말을,

아름다운 작품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동시에 전하고 싶다.

틀린 그림 찾기 재밌다. 근데 다른 그림 찾기가 맞겠지?

광적인 디테일이다.

누가 자세히 보지 않을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조각해 냈다.

보이는 모습만 신경 쓰고 디테일하게 일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후회됐다.

디테일에 신경 쓰지 못해 망쳤던 수많은 일들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가, 여행 중이라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 되자'라는 다짐을 갑자기 페나성에서 다시 하게 되었다.


홀리홀리한 스테인드글라스

페나성의 예배당은 원래 수도원 시절의 교회를 개조한 공간이다.
예배당 벽면 중 주 제단의 맞은편, 햇살이 스며드는 자리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다.
색유리 사이로 비치는 빛이 돌기둥 위에 떨어지면, 공간 전체가 신비롭게 물든다.


이 창문은 1840년경 페르디난트 2세가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장인이 제작했으며, 종교적 의미와 함께 왕실의 상징을 담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 항해를 마치고 귀국해 왕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공식 기록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일부 가이드 설명으로 전해진다.)


확실히 바스쿠 다 가마는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한 시대를 연 영웅’이다.
그의 항해가 없었다면 포르투갈의 황금기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페나성의 교회 한가운데서 그 이야기가 빛으로 새겨져 있으니,
신의 축복과 인간의 야망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셈이다.


페나성은 빨강, 노랑, 파랑의 색으로 유명하다.

사실 최초에는 지금과 같은 강렬한 원색 조합은 아니었다고 한다.

1990년대 복원작업 시, 당시의 색채를 재현하기 위해 원도료를 분석하고 강렬한 원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덕분에 "1800년대에 이렇게 과감을 색을 쓰다니!"라고 감탄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쨍한 색감에만 감탄하면 된다.


다만 색은 많이 바랬다.

리스본, 신트라 지역은 습도가 높고 바닷바람이 강해서 외벽이 쉽게 탈색된다고 한다.

덕분에, 너무 현대적이지 않고, 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어서 그 맛이 좋았다.

뷰가 엄청나다. 이 뷰를 보고 엄청나다는 말밖에 못쓴다는 내 자신이 개탄스럽다.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이다.

이 건물은 물론 어디에 놨어도 아름다웠겠지만

이렇게 산 꼭대기에 대서양이 보이는 곳에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더해지고 관광 가치도 높아진 것 같다.

여기에 아무것도 없는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도 아름답겠지만,

때론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가 더 큰 시너지를 내기도 하는 것 같다.

환경보전만이 언제나 정답인 것은 아니다.


페나성은 걸어 올라가도 되지만, 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물론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다만, 버스 줄은 길고, 배차가 짧지도 않으며, 사람이 많이 타서 만차의 답답함을 참아야 한다.

또, 올라가는 거리가 짧아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가는 시간이나, 걸어가는 시간이나 비슷하다.

성수기에는 걸어가고, 비수기에는 버스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여름에는 지붕이 열리나 보다. 지붕이 열리면 더 재밌을 것 같다.


알록달록 페나성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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