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

#23. 리스본 대지진

by 라헤

도시 행정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도시가 싹 다 무너지면 어떨까?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새롭게 도시를 만든다면?‘

과 같은 못된 상상을 하곤 한다.


도시를 개선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리스본 대지진은 엄청난 비극이었지만,

포르투갈인들은 이것을 또 다른 기회로 만들었다.


리스본이 무너진 날

1755년 11월 1일 아침, 성인의 날이었다.

교회로 향하던 사람들은 땅의 진동을 느꼈다.

대지진이었다.


지진은 짧았지만, 결과는 길었다.

도시는 무너졌고, 해일이 강변을 덮쳤다.

도시는 며칠간 불길에 재가 되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다.

리스본을 완전히 바꿀 기회.

이 사건은 단순한 재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도 너무 엄청난 재앙 앞에선,
과연 신이 있는가 의심한다.


당시의 철학자들도 같았다고 한다.

볼테르는 신의 섭리를 의심했고,

칸트는 지진을 신학이 아닌 자연현상으로 분석했다.


이렇게 리스본 대지진은

자연 현상이 ‘신의 벌’이 아닌,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설명됐다.


죽은 이를 묻고, 산 사람을 먹여라.

이 말과 함께 도시의 부활이 시작됐다.

시신은 즉시 매장했고, 약탈은 엄벌에 처했다.

그리고 도시를 다시 세웠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리스본이 만들어졌다.

골목은 곧아졌고, 도시는 격자가 되었다.

건물 안에는 나무로 된 내진 구조가 숨겨졌다.

아름다움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했다.


리스본은 비극을 기념하는 도시가 아니라

비극을 설계로 바꾼 도시가 되었다.


무너져서 멈추면 거기가 끝이지만,

다시 일어나면 새로운 시작이다.


이는 육지의 한계를 벗어나,

미지의 바다로 나아갔던

포르투갈인 고유의 DNA가 아닌가 싶다.


리스본 지진의 흔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카르모 수녀원이다.


산타 후 스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찾아가기 쉽다. 물론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맛도 있다.

언덕길 주위로 기념품 가게 등이 줄지어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가파르지만 재미는 있다.

산타후스타에서 내려다본 조망이 시원하다.

올라가면 바람이 많이 분다.

티라미수 같은 지붕이 펼쳐지고,

멀리 고성과 바다가 보이는데, 제법 멋지다.

리스본 여행의 절반은 전망대 오르기다.

그래서인지 계속 오르다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로마의 포로로마노를 좋아한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골조만 있는 건물이 오히려 재밌기도 하다.


온전히 남아있다면 지금처럼 인기가 많았을까?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것이 신의 한수 같다.

우기임에도 푸른 하늘이 눈부셔서,

사진 찍는 맛이 났다.


평회로운 날씨와 지옥 같았던 과거를 보여주는 건물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태풍이 몰아친 뒤 잔잔해진 바다를 보는 기분이었다.



숙소 가는 길에 엄청난 크기의 콘크리트 옹벽과

이를 안정시키기 위한 앵커들을 보았다.

언덕이 많아, 건축물이 곧 옹벽이 되는 도시다.

참 재밌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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