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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Nov 30. 2024

검술 1 #남들이다안된다고해도내가좋으면하는거지

고류 검술 가토리신토류 1편

"절대 안 됩니다.”

"검술도 안 될까요?"

“달리거나 점프를 하는 모든 스포츠는 무리입니다.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가급적 하지 마세요. 무릎에 다 안 좋습니다."

"근데, 검술이 뭐죠? 검도 같은 건가요?”


 그래 맞아.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은 검술이 뭔지 모르지. 나도 배우기 전에는 몰랐으니까. 긴 막대기 같은 거 휘두르면 다 검도인 줄 알지. 검술이 꽤 다른 무술이라는 걸 누가 알겠어. '대한검도회'나 '해동 검도'는 어디서 들어본 거 같아도 '고류 검술'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많을 걸. 아무튼, 아픈 무릎의 MRI 사진을 들고 찾아간 병원들의 의사는 모두 똑같이 말했어. 절대로 검술도 안된다구.


 난 명상을 하면서 결가부좌에 공들였다가 무릎 안에 있는 반월상 연골이 파열됐어. 처음에 무릎에서 두두둑 소리가 나길래 많이 뻑뻑한 줄 알았지. 바로 아프지 않았으니까 연골이 찢어진 줄도 몰랐어. 그 후 얼마 뒤인 2020년 7월,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무술을 배우겠다고 도장을 찾아갔을 정도니까. 구경하러 도장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가 바로 등록을 했어. 흥미가 생기고 괜찮다 싶으면 바로 해 보는 기질이 또 꿈틀거린 거지.

 

 내가 중년까지 살면서 경험한 무술은 태권도와 합기도가 전부야. 태권도는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유치원 대신 잠깐 다녔었고, 합기도는 중학교 때 6개월 정도 배웠던 거 같아. 집 근처에 합기도 도장이 있어서 동생이랑 함께 다녔어. 왜 다니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 아마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지 모른다는 부모님의 걱정과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려는 시도의 교집합이 아니었던가 싶어.


 요즘에도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이 큰 문제지만, 1980년대 학교에도 그런 일은 빈번했어. 게다가 집에서는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을 가리지 않고 마구 두들겨 팼어. 특히 남학교에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비아냥을 남발하는 선생님들도 많았지. 그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어. 시내나 한적한 길거리에는 꼬맹이들의 돈을 뺏는 청소년 불량배들도 넘쳐났어. 인상이 더러운 형들이 "야!"하고 부르거나 느닷없이 어깨동무를 하면, '아! 오늘은 망했구나.' 싶었지. 좋은 옷과 신발도 가져가고, 눈이 마주치면 야린다고(째려본다고), 표정이 일그러지면 기분이 나쁘다고 주먹이 날아왔어. 그야말로 일상 속에 폭력이 만연한 시대였지. 그래서일까? 동네에는 국적을 초월하는 각종 무술 도장들이 많았어.


 합기도는 발로 차고, 손이나 팔을 꺾고, 낙법을 하는 게 참 재미있었어. 뭔가 적성에 맞는 취미를 찾은 느낌이었지. 한참 젊음의 혈기가 뻗칠 나이였는데,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고 주로 집에만 처박혀 있었거든. 근데 오래 다니지는 못했어. 동생은 한 달 만에 쇄골이 부러져서 그만두었고, 난 아버지가 오래 못 다니게 했어.


 아버지는 언젠가 불쑥 도장에 와서 내가 하는 발차기를 보고 집에 와서 칭찬을 하더라. 그 후에 곧 그만두게 했어. 공부하라는 이유를 붙였는데, 나중에 그러더라구. 어디 가서 싸움박질하면서 그 발차기를 써먹을까 봐 걱정되었다구. 아버지는 학교 다닐 때 권투를 배웠어. 제법 잘했는지 고등학교에서 짱이었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친구분들한테 들은 얘기야. 자기들끼리 나누던 추억의 대화를 들었는데 영화 몇 편은 찍겠더라. 아버지는 내가 본인처럼 공부를 하지 않고 싸움에 빠질까 봐 걱정이 되었던 거겠지.




 그 이후로 도복을 입은 건 군대였어. 의무적으로 태권도 1단을 따야 했거든. 그게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 제대하고 나서는 도복을 입어본 적도 없고, 도장 근처에도 가 본 적도 없어. 무술 자체에 관심이 없었지. 대다수의 요즘 사람들처럼. 아직 젊은 시절이었기에 운동의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했고, 30대에 도전했던 마라톤의 완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거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검을 사용하는 무술을 배우고 싶더라구. 정말 뜬금없이 문득. 갑자기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음식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렇게. 그게 무의식에 남아 있는 무술 영화나 만화의 잔상 때문인지, 아니면 검이라는 특별한 소재에 대한 끌림이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어. 어디 한구석에서 차곡차곡 누적되던 무의식이 이때다 싶어 뚫고 나온 거 같아.


 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는데 가장 많이 뜨는 검도는 못하겠더라구. 40대 중반의 나이로 승부를 위한 목적성과 격렬한 반복 훈련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어.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 검법이나 검술을 찾아 한참 찾아봤는데, 마땅한 게 없더라. 조선에서 검술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한 거 같고, 그나마 있던 것들도 일제 강점기 이후 완전히 명맥이 끊긴 거 같았어. 한참을 헤매다가 '고류 검술'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어.


 일본에는 스포츠로 발전한 검도 말고도 전통을 이어오는 많은 검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사무라이의 옛 검술이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더라구. 그걸 일본은 '고류 검술'이라고 부르더라. 한국에서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찾아갔지.


 내가 발을 들여놓은 곳은 대한합기도회 본부 도장이었어. 그곳은 일본의 현대 무술인 아이키도와 고류 검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었어. 무술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키도가 뭔지도 몰랐어. 근데 알고 보니 내가 중학교  배운 합기도의 일본 발음이 아이키도더라. 일본켄도를 우리가 검도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런데 일본 아이키도와 한국의 합기도는 전혀 다른 무술이었어. 이름이 똑같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서 그 역사와 변천과정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합기도(合氣道)라는 명칭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어. 아무튼  도장장님(관장님을 이렇게 부르더라) 권유에 따라 우선 아이키도와 검술이 포함된 무기술을 배우기로 하고 등록을 했지.





 제대 후 23년 만에 도복을 다시 입고, 도장의 막내로 첫 수련에 참가했어. 호기심과 낯설움이 마구 뒤섞인 머리와 갈팡질팡하는 몸으로 겨우겨우 흉내를 내기만 했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구.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도장에 다니고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내 무릎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어. 평소와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잘 안 쓰던 근육들을 사용하니까 가장 약했던 부위에 통증이 오더라. 잠깐의 산책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서야 병원에 갔지. 너무나 미련했어. 병원에서 ‘반원상 연골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법을 찾느라 도장을 못 나가게 되었어.


 의사들은 한결같이 몸을 과하게 사용하는 스포츠나 운동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어. 지금보다 상태가 더 악화된다는 얘기를 덧붙였지. 당시에 난 출판을 위한 글을 쓰면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고, 코로나로 잘 돌아다니지도 못했기 때문에 갑갑한 영혼의 때를 벗겨내는 무술 시간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어. 그래서 바닥에서 구르고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는 아이키도는 아예 포기하고, 서서 하는 검술은 어떻게 안 되겠냐고 물었지. 근데 다들 안된대. 절대로. 검술에서도 빠르고 급격한 신체의 이동이 필요할 테니 하지 말라고 하더라.


 걷기가 힘든 질병이 생겨서 가뜩이나 우울한데, 상의와 머리카락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즐기던 무술을 못하게 되니 환장하겠더라구. 그래서 재활 운동에 더 신경을 썼어. 재활로 통증이 줄어들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지자 가장 튼튼하게 생긴 무릎 보호대를 사서 다시 도장에 나갔어.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의사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도장장님께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고 무기술 시간에만 나갔어.


 그리고 어느덧 도장을 찾아갔던 때로부터 만으로 4 4개월이 지났어.  여전히 의사들의 말을  듣고 있어. 업그레이드된 무릎 보호대를 차고 검술을 배우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다니고 있지. 가끔 찌릿하거나 뻐근한 무릎 통증이 있지만 그럴  스트레칭을  많이 하거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며 무리가 되지 않게 주의하고 있어.


 검술은 이제  삶의 일부가 되었어. 도장에 안 가는 날에도 수백 번의 내려 배기를 운동 삼아 즐기고, 한국에 검술을 전해준 일본의 선생님도 만나러 가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만날  있는 교류의 축제에도 참가를  정도지. 오래도록 즐기며 탐구하고 싶은 분야가 하나  늘어난 셈이.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계속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어. 지금은 근력 운동을 하는   무릎의 재활 때문인지, 검술을 위해인지 헷갈릴 정도야.


 의사들의 말을 듣고 포기했으면 지금 내 곁에는 검술이 없었겠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난 땀으로 생산되는 그 순수한 즐거움과 인류의 문화유산을 깊이 알아가는 체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검술을 통해 만난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철학과 관계의 다양성도 무시할 수 없거든.


 이렇게 재밌고, 배우는 게 많은 데 이걸 포기하라고? 난 절대 포기 못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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