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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Dec 14. 2024

#검술2 #큰힘에는큰책임이따른다

고류 검술 가토리신토류 2편



“검은 선일까요? 악일까요?”

“……”

“검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측면에서 악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수양이 중요합니다.”

“……”

“선한 마음이 없는 사람이 검을 들면 세상이 악으로 물들게 됩니다. 그래서 검술은 아무에게나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의 전통 검술을 보급하고 계시는 윤대현 선생님의 말씀이야. 선생님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검술을 가르치면 안 되고, 도장 이외의 곳에서는 절대 검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종종 해. 누군가 시비를 걸면 먼저 고개를 숙여서 다툴 일을 만들지 말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칼을 들고 다가오면 서둘러 도망가는 게 최선이라는 조언도 하시지.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제안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거야.


 내면이 성숙하지 않거나 마음의 수양이 덜 된 사람들이 큰 힘을 갖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야. 그 힘은 무술 같은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총처럼 무기가 될 수도 있고, 권력 같은 자리가 될 수도 있지.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 큰 힘을 얻게 되면, 그것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또 거기에 맛 들리면 계속 삐딱하게 나아가는 거지. 운동 좀 했다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무기를 들었다고 약탈을 일삼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제 멋대로 하는 행위가 다 마찬가지지.


 지난 7월에 뉴스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30대 어떤 미친놈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칼로 죽였잖아. 이 사건으로 9살과 4살인 피해자의 아이들은 영원히 아빠를 볼 수 없게 되었어. 젊은 사람만 그런 게 아니야. 작년에는 태권도를 오래 수련했다는 70대 노인도 주차 시비가 붙었던 이웃의 손목을 잘라 과다 출혈로 죽게 만들었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


 70대 노인은 ‘태권도 할아버지’, ‘노인 검객’ 등으로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어서 더 논란이 됐지. 그는 대기업을 정년퇴직하고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4단을 취득했고, 나중에는 검도까지 수련의 폭을 확장했어. 늦은 나이에 무술을 시작하여 화재가 되었는데, 결국 자신이 익힌 무술로 사람을 해치게 된 거야. 만약 그가 무술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혹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진검을 집에 두지 않았다면, 남의 목숨을 빼앗는 비극은 없었겠지.

 

 그 사람은 무술의 기술만 배우고, 자신을 다스리는 정신은 수양을 하지 않은 셈이야. 어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인내심이 없으니 감정 조절도 못하고,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한 거지. 아무 때나 화를 내고 툭하면 주먹부터 나가는 꼬맹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거야. 참 부끄러운 어른들의 자화상이랄까? 신문 기사에 따르면 그 노인은 태권도 도장에서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을 도맡았다고 하던데 도대체 뭘 가르친 거야? 다른 사람에게 똑바로 살라고 얘기하는 건 쉬워. 자기가 한 말대로 사는 게 어려운 거지.  


 내가 검술을 배우겠다고 도장을 처음 찾아갔을 때, 선생님은 반갑게 대하지 않으셨어. 가식적인 웃음이 담긴 영업적인 표정이 없었어. “전에 어떤 운동을 했나?”, “왜 배우려 하나?”, “지금 무슨 일을 하나?” 마치 면접이나 취조를 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꼼꼼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구. 처음에는 ‘내가 돈을 내고 배우겠다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그런데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그 어떤 대의명분이나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그게 진실이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벤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이것이 검술의 진정한 이치다.” 이 말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추억편’에 나오는 대사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제자에게 전하는 스승의 핵심적인 메시지야. 아무리 명분을 내세우거나 포장을 해도 검술은 결국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술이라는 점을 강조한 대사야. 19기 중엽, 극도로 혼란했던 일본에서 청소년이었던 제자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해. 자신의 검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의견을 스승에게 털어놓지. 이때 스승이 만류하면서 내뱉는 대사가 위의 내용이야. 그리고 제자가 어디를 가든 각자의 정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말 거라고 말해. 검술이 뛰어난 제자는 대량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지.





 상대를 때려눕히거나 제압하는 일반적인 맨손 무술과 검술의 가장 다른 점이 바로 그거야. 칼은 특성상 한 번 뽑게 되면 피를 보게 마련이지. 그래서 제대로 된 검술 도장에서는 늘 주의를 주는 거야. 칼은 몸에 닿으면 치명상을 입거나 생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기적으로 언급하는 거지. 도장에서는 비록 목검으로 연습을 하지만 진검처럼 조심스럽게 취급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경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야.


 윤대현 선생님은 배우러 오는 사람이 미친놈인지, 기술만 배우러 오는 얄팍하고 삐딱한 사람이 아닌지 알아보려고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거야. 자칫하면 살인자를 길러낼 수도 있으니.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영업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시대에 흔하지 않은 분위기였어. 성인이 된 이후에 도장에 다닌 적은 없지만, 사람을 봐 가면서 받아준다는 체육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일까?’가 일반적인 도장 관리자들의 생각인데, 그에 반하는 상황이 오히려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구. 선생님의 묵직한 책임감과 삶의 철학이 느껴졌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야. 그 대통령의 직무가 오늘 정지됐어. 국회에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기 때문이지. 대통령의 힘은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특정 기간 동안 잠시 위임된 거야. 그런데 윤석열은 자신의 권력 보전을 위해 선을 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어. 주차 시비가 있던 이웃에게 화가 나서 진짜 칼을 빼 들었던 70대 노인처럼 행동한 거지. 국회에 모인 용감한 시민들과 담을 넘어 계엄 해지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중 누군가는 70대 노인에 의해 손목을 잘린 사람처럼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지. 상상의 파편만으로도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야.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며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어서는 그 주장과 반대적인 행동으로 지지율이 계속 떨어졌어. 마침내 자신의 불법적인 과거 전력이 서서히 드러나고,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자 군인들을 동원하여 죄 없는 국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지.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참 경악스러워. 


 사람의 말만 듣고 그를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믿음인지 이번 기회에 많은 사람들이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어. 말보다 행동이 우선이고, 실천에 따라 말이 나와야 한다는 공자의 말이 무척 뜻깊게 느껴지는 겨울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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