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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어 Apr 18. 2024

인물의 서사는 역사가  된다 -성석제 <투명인간>-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꿈꾸는가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를 알면, 시간이 지배하는 망각의 왕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질 온갖 덧없는 것들

-유시민 <역사의 역사>중에서(e-book 98%)-



성석제의 <투명인간>(창비, 2014)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에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삼대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인 김용식 세대에서부터 손자인 김만수, 증손자인 김태석까지 시대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문제들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관통한다.

대학 등록금을 위해 월남전에 참전했던 명문대 공과생 백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큰 손자를 생각하며 “백수처럼 무고한 청년들을 죽음의 전장으로 내몬 권력자들, 독재자의 나팔수가 된 언론과 사회 지도층이라는 종자들, 동족의 목숨과 피땀으로 제 배를 불린 더러운 장사치들, 죽음의 독약을 만들어 뿌린 제약회사며 군수산업체며 군 지휘자며 죽음의 시공간을 만들어낸 모든 존재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p.162)라고 절규한다. 김용식은 본인의 죽음 앞에서 “소심한 자의 우연한 선택으로 일신을 지키고 분에 넘치는 자손을 얻고 일신의 기쁨을 누렸으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악랄한 이빨과 발톱에 백수를 잃었다. 실로 분통하다. 억울하다. 나의 무력함이 뼈에 사무친다.(중략) 사람이란 죽을 때 등잔에 기름이 다해 불이 꺼지듯, 방 안의 전등이 꺼져 암흑에 잠기는 것처럼 의식이 스러지면 모든 것이 그만인 것이다.“(p.163)라고 말하며 영원히 잠든다. 아들 충현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며 “해골이나 다름없이 비쩍 마른 아버지의 얼굴에서 감긴 눈 주변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땅처럼 솟고 꺼지고 평평하고 갈라지고 합쳐진 흔적이 남아 있는 자리일 뿐이었다. 없을 무, 없을 무, 없을 무……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무, 무, 무, 무, 무, 무. 무슨. 주문처럼 ‘무‘라는 한 글자가 내 입속에 가득 찼다.”(p.167)라고 말합니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간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들이 쌓인다.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역사가 되어있다.


아버지 충현은 “이름 없는 수많은 소모품 가운데 하나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진 존재라고 한다면 억울한 중에도 이해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젊고 건강한 네가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니.”(p.127)라며 목놓아 운다. “좁아터진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면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데가 서울이었다. 없는 놈끼리 더 훔치고 못 살수록 더 싸우고 서로 안된 처지에 서로를 욕하고 아프고 주리고 외롭게 힘들게 살았다. 서울은 무식한 내게도 너무도 노골적으로 ‘물질이 주인인 세상‘이었다“(p.164)고 충현은 말한다.



김만수는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형이 죽자 “네가 형을 대신하여 집안을 지켜야 한”(p.131) 다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릅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동생들, 제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투입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안”(p.236)습니다. 김만수는 다니던 회사일로 큰 빚을 지게 됩니다. 그는 “하루에 스무 시간 가까이 일하며”(p.327) 십 년 동안 일하여 빚을 갚습니다. 김만수는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p.367)라고 전하는데요. 여러분은 만수의 이런 태도에 공감하시나요?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 욱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p.365)


투명 인간‘. 한강 마포대교.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다리의 난간은 각종 문구들이 빼곡하다. “여보게 친구야,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게나."(p.359) 만수는 “사람은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믿는 대로 변하지 않는가.”(p.361)라고 말한다. 투명 인간은 모든 것을 흡수하지만 모든 것이 보지 못하기도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진실되지 않고 거짓된 듯 보이는 현실 속에 인간은 어쩌면 투명 인간이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꿈꾸는 이야기처럼.



석수는 회합 토론회에서 오영주를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합니다. 영주는 공단생활을 하며 노동운동을 하는데요. 그는 “내가 영주와 동거하고 있었다는 이유“(p.238)때문에 대공과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석수는 고문의 강도가 심해질수록 “그들이 하라는 대로 광란하고 울부짖고 길들여”(p.24) 지며 짐승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들에게 “빌고 또 빌었다. 완전히 항복했다. 무엇이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p.242)고 고백합니다. 석수는 고문으로 인해 “세상이 뭔지 알았다.”(p.244)고 밝힙니다. 화자는 “나는 오로지 내 갈 길을 갈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 편일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요. 그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힘을 가진 채로 살 것이다. 살아남으로써 이기리라.“(p.246)고 다짐합니다. 여러분은 석수의 이런 태도에 대해 공감하시나요?



군부 독재 시절 석수는 남영동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고문에 못 이겨 항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짐승’이 된다고까지 전하는데요. 우리는 박종철 고문 사건에서 알고 있듯이 수많은 청년들이 남영동으로 끌려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석수의 “살아남으로써 이기리라.”라는 말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행복해하는 투명인간 가족이 다리 너머에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투명인간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픔도 슬픔도 모두가 평등한.(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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