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올리버 색스 박사는 신경학자이자 작가였다. 지난 2015년 82세의 나이로 희귀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글을 썼으며 평생 글쓰기는 그의 삶이었다.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있다고 평할 정도로 일기 쓰기와 편지 쓰기를 즐겼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과 감정이 분명하게 정리된다.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꼴을 갖추어가는 과정 전체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 올리버 색스 박사.
그의 저서 <온 더 무브>는 그의 자서전이다. 그가 환자를 대하고 질병을 대하는 자세는 의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나 심지어 일반인에게조차 귀감이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를 사랑한다.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고 전한다. 그가 인턴 시절에 만난 조슈아는‘급성백혈병’ 환자였다. 그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자 자살을 시도한다. 색스박사는 그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하며 그를 살린다. 하지만 조슈아는 통증에 밤낮으로 비명을 지르며 결국 며칠 뒤 세상을 떠난다. 여러분은 색스 박사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보셨나요?
그는 의사로서 사명을 다한 것일까? 환자의 고통으로 마취제를 쓰지만 깨어나면 더 큰 고통이 따랐다. 그의 삶의 질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의 자살을 막은 색스박사의 태도는 옳은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색스 박사는 열두 살 무렵 “내 정체성이 하나의 명칭이나 진단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힘들었다고 전한다. 그가 열여덟 살에 부모님에게 ‘동성애자’ 임을 말하자 부모님은 매우 가혹하고 완고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낮에는 의사로서 삶을 살고 밤이면 모터사이클을 타며 익명의 존재로 배회하였다고 말한다. 그의 내부에는 ‘결핍과 억압’이 있었다고 밝힌다. 그의 이런 생각에 공감하시나요?
성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할 때 어머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다고 말한다. 1950년대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범죄 행위로 여겼다. 유대교이며 의사 집안의 부모님으로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반문해 본다.
색스박사는 1972년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경호원, 잡역부들은 “형편없는 근무 환경에서 일했”다고 전한다. 어느 날 그들이 파업을 선언했을 때 그는 학생 두 명과 환자들을 돌본다. 파업이 끝난 후 복귀한 직원들은 “박사님은 파업파괴자”였다 는 경고문을 받게 된다. 저자는 의사였기에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러분이라면 박사의 이런 태도에 공감하시나요?
파업을 하는 그들의 행동에 지지를 하고, 환자들을 빈 공백기간 동안 방치하지 않은 박사는 진정한 의사가 아닐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것이겠지만 많은 전문의들이 진료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단체에서의 집단행동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준다.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의대생들에게 수업거부를 종용하는 일이 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고백한 보도가 있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힘겨루기 상황은 색스 박사의 경우와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는 지금 죽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 서문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중에서(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