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 탕탕탕!
뚝딱뚝딱! 탕탕탕!
붉은색 벽돌 조각을 두들기고 나뭇잎을 가져다 빻는다. 주변의 호박잎을 따아 그릇을 만들고 그 위에 아카시아 잎을 따서 빻거나 모양 그대로를 살려 올려놓는다. 파릇한 초록색의 붉은색 가루를 뿌리고 짓이겨진 나뭇잎과 하얀색 아카시아꽃이 먹음직스럽게 담겼다. 널따란 돌판 위에 나뭇가지로 몇 벌의 젓가락을 만들어 놓고 초록색 그릇들을 조심스럽게 올려 상차림을 마무리한다. 한 상 가득 자연 그대로의 음식들이 차려졌다. 만족스러운 요리시간으로 모두들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변에서 이것저것 가져다 부수고 찧어서 담아낸 것들이 제법 그럴싸했다. “제법인데, 맛나 보인다.”“우와, 그건 뭐야?”“술이야.”“술?”“아카시아 술.”한 친구가 어깨에 힘을 주고 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이컵에 담은 아카시아꽃이었다. 아카시아술이라. 한 때 우리 아버지도 아카시아술을 담그신다고 야단을 떨었던 일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네. 그래도 우린 술보다는 아이스크림이 좋지 않을까? 아카시아 아이스크림, 어때?”그 친구를 비롯하여 모든 아이들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에 동의하고 둘러앉았다. 우리는 한 상차림 식사를 맛나게 먹었고, 웃고 떠들며 놀았다. 그렇게 하루 해가 저물어가며 우리의 돌식탁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집 밖에서의 소꿉놀이응 집안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방학 때 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직장에 가시고 비슷한 터울의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나만 남게 되면 우리는 엄마가 사다 놓은 20권짜리 요리 전집 중 한 권씩을 들고 정독을 했다. 사진 속 요리를 보며 “이것 맛있겠다.”“이건 무슨 맛일까?” “우와 이런 요리가 다 있네.”하며 서로가 민망하지 않도록 우리는 몰래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그중 한두 개씩을 꼽아 우리가 할 만한 요리를 골랐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할 만한. 일단 최소한의 재료로 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의 적은 돈으로 구입 가능한 재료여야만 했기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복잡한 레시피는 탈락, 고급진 재료는 대체 가능한 저렴이가 없으면 탈락, 커다란 오븐이나 집에 없는 조리도구가 필요한 요리도 탈락, 재료가 많이 필요해도 탈락. “그럼 만들 수 있는 게 없잖아!”막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요리란 많지 않았다. 그림의 떡만 열심히 들여다 보고 또 봐도 우리의 배고픈 배는 시간이 더해지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꼬르륵”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언니가 김치볶음밥 해줄게, 그거 먹자!”“치! 뭐야.”막내가 잔뜩 토라져 울상이다. “언니가 맛나게 해 줄게, 다 먹고 과자 사러 가자.”언니와 나는 막내를 어르고 달랬다. “알았어.”주방으로 간 언니는 석유곤로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프라이팬에 마가린을 잘라 녹이고 계란과 찬밥 그리고 김치를 잘게 썰어 넣어 볶았다. 막내는 뾰로통하며 툴툴거리더니 김치볶음밥 냄새에 먼저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라면 국물이 묻어 꾸덕해진 책을 상위에 깔았다. 언니가 프라이팬을 올려놓자 기다렸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까 것도 없이 팬에 코를 박고 숟가락질을 했다. 우리는 밑바닥의 누룽지까지 싹싹 긁어서 야무지게 먹었다. 빨갛고 윤기 나는 맛깔스러운 김치볶음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 먹은 우리는 빈 숟가락만 빨며 아쉬움을 달랬다. 상상의 맛보다 현실의 맛이 만족감을 주는 새삼스러움을 어렴풋이 느꼈다.
소꿉놀이로 뒷동산을 뛰어다니고 아카시아 꽃을 따고 가짜 음식을 만들던 순간도, 요리책의 멋진 요리들을 보며 상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와 김치볶음밥을 해 먹은 순간도, 그때는 내가 엄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요리라는 것은 계란 프라이에 라면 끓이는 것이 전부였던 나지만 결혼과 동시에 솥뚜껑 운전을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모든 일은 미래를 위한 준비인 건가. 살아보니 과거의 행위들이 어른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당연하지만 그때는 알 수 없고 지금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과정중임을 깨닫는다. 게다가 요리를 하며 음식을 만드는 일은 사랑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모성애라는 본능으로 사랑을 담아 일취월장하는 요리 솜씨를 갖게 되는 지금. 34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끓이고 볶고 데치고 무치기를 반복한다. 어릴 적 소꿉놀이는 배운 적 없는 요리를 결혼과 동시에 시작하게 만드는 예행연습이었나 보다. 벽돌을 짓이기던 벽돌 고춧가루대신 태양초 고춧가루로 김치를 뚝딱 만들고 아직도 징그러운 생닭을 고무장갑을 끼고 깨끗이 닦아 녹두와 함께 푹푹 끓인다. 뚝딱뚝딱, 탕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