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화재대피 1군

by 샴스 Shams

병원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많다. 새벽 4시에 몸을 일으켜 5시까지 기다림, 그러면 간호사가 와서 혈압과 체온을 잰다. 이후에 또 한동안 기다림. 그러면 아침 식사가 나온다. 아침 식사 후에는 한참 기다림. 그러면 석고실로 가서 소독하고 다시 부목을 감는다. 이제 지저분한 석고실도 꽤나 익숙하다. 약간 정도 든 것 같다. 가면 늘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절여져 있다. 안타깝고 고마운 사람들. 어쨌든 석고실을 나오면 다시 기다림. 점심이 나오고, 기다림. 저녁이 나온다.


오늘은 이 기다림의 시간 중 하나에 이제 꽤나 익숙해진 휠체어 질(?)로 병원을 쏘다녔다. 화장실도 거뜬히 다녀오고, 머리도 감는다. 다녀온 뒤로는 창문가에 앉아서 바람을 쐬었다. 바깥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금방 피로감이 올라왔다. 약간 바쁘게 오전을 보내면 하루를 보낼 에너지를 다 쓴다. 금세 지쳐서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기다림으로. 이제 침상은 내 집 같다. 실수로 간호사님에게 침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집으로 간다고 할 정도로.


기다리는 시간에 시간 때우기로 핸드폰도 노트북도 질리면 각종 안내문과 표기들을 읽는다. (긴 글은 아무래도 힘드니까) 내 머리 뒤에는 종이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름과 등록번호, 주치의, 입원, 수술일 등이 적혀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화재 대피 1군’이라 적혀있다.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먼저 구해야 해서 1군인가보다. 다친 사람들은 먼저 구하겠지~ 하고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다. 그런데 복도에서 대기하면서 안내문들을 읽다가 화대 대피에 대한 안내문을 발견했을 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재 대피는 1군부터 4군까지 있었으며 중증도가 높을수록 숫자가 높고, 1군은 가장 이동하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시설과는 다르게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이동이 빠른 환자부터 대피한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름 심각한(?) 질환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병원 안에는 독립보행이 불가능 한 자들도 있었고(3군), 기계장치가 필요한 중환자들(4군)도 있었다. 병실을 찾아가지 않으면 그들을 볼 수 없었기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생명을 걸고 일분일초를 앞다투는 치열한 싸움도, 그러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병원엔 있을 지어다.


며칠 뒤에는 만약 불이 난다면 좀 더 천천히 구조될 2군(도움이 있으면 독립보행이 가능한자)으로 승격(?)했고 삶과 조금 멀어졌다는 것을 인증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삶과 멀어진다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모르는 척하려고 해도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이 병원의 누군가처럼 거동이 불편해질 것이고, 시간이 더 지나면 세상을 떠나고 말 것이다. 그동안 불편한 데도 하나 없고 거리낌도 없이 마음껏 살아오며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가 얼마나 큰 걸까?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았다. 다시 한번 겸손해지기.


병원에는 사실 또래들이 거의 없다. 정형외과 병동의 대부분 사람은 퇴행성 관절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니 40대면 젊은 축에 속한다. 어르신들은 어쩌다 나를 보면 다들 걱정부터 했다. “어쩌다가 젊은 사람이.. ㅉ” 하고. 오늘도 지나가는 할머니가 내 다리를 보더니

“젊은 사람이 어쩌다 다쳤어.." 하시다가 이내 말을 바꾸셨다. “아녀, 젊은 사람도 좀 다쳐봐야 해. 그래야지. 아픈 사람들 마음을 알아.”


그 말씀에 백번 공감한다. 다치고 나니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 알게 되었다. 수술하기 전에 다친 다리를 끌고 도시를 돌아다닐 때부터. 지하철이 깨끗하고 빠르고 편하니 버스보다 선호했는데, 지하철역이 그렇게 넓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신호등 신호는 또 왜 이렇게 짧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다리가 불편한 순간부터 도시는 너무 넓어졌다. 10분 거리 목적지로 이동하는 게 힘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지도, 앞으로 가지도, 길 한가운데 주저앉지도 못한 채 막막했던 그 감정. 모두 다치지 않았다면 모를 것들이었다.


덕분에 조금은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넓어진 도시의 크기만큼, 나라는 사람의 세계관도 넓어졌다. 이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 장애를 가진 이들, 나이가 많은 이들,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이 세계가 얼마나 어렵게 설계되어있었는지. 목숨을 걸고 이동권 투쟁을 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목소리 내오던 것들이 얼마나 절실한 것들이었는지. 사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이 세계에 바뀌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몸이 다시 편해지면 금방 잊을까 봐 겁이 난다. 할머니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지. 불편함을 잊지 말아야지. 다리를 다친 것은 세계를 늘려준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러니 이 모든 과정에 고마워하자. 너무 늦지 않게 발견해서 더 심각해지기 전에 치료받을 수 있었던 것. 좋은 교수님과 담당의를 만나서 무사히 수술할 수 있었던 것. 병실에서 다정한 동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 친절하고 노련한 조무사님들과 간호사님들 덕분에 편하게 지냈던 것. 기꺼이 돌봄을 자처한 가족들이 있다는 것. 서울에서 머나먼 일산 끝자락까지 면회를 와준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고통과 압박을 견디고 무너지지 않은 스스로에게도. 고마워. 정말로.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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