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던 치료받을 수 있도록

by 샴스 Shams


"자녀들을 미래를 위해서라도 수도권으로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입원하고 함께 면회를 다니는 동안 언니는 넌지시 이런 말을 건넸다. 대학을 지역에 있는 곳으로 가고 그 뒤로 거의 계속 그곳에서 살아오면서 그 안에서 애쓰며 관계와 일을 찾아서 지내온 언니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언니랑 더 가까운데 살아서 좋다던가, 그래도 지역에서의 삶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반응들은 서서히. 대신 그보다도 훨씬 더 즉각적으로 "다행이다"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더 이상 갑자기 생기는 인생의 변곡점들에 발을 동동 굴러야 할 일이 없어지겠다는 안심이었다.


언니가 재작년에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지역에 있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는 몇 주 동안 입원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다했지만 끝끝내 병명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답답한 마음에 예약한 서울의 큰 병원에서는 단 하루 만에 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병명을 알게 되자 치료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완치가 되는 병은 아니지만) 그 뒤로 언니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 진료를 받고 있다. 지역에는 이렇게 '서울의 큰 병원'을 오고 가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몇 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겨우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역에 사는 또 다른 친구는 최근에 임신을 했는데, 동네에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 인근 대도시로 병원을 다닌다. 차로 3-40분 되는 거리를 매주 오고 간다. 만약의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 거리를 가야 하는 것이 불안하기만 할 따름이다.


이번에 엄마가 만약에 지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빠르게 병원으로 갈 수 있었을까? 병원에서 응급환자를 받아주었을까? 신경외과 전문의가 당직으로 있었을까? 그가 이렇게 빠르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언니의 뇌출혈로 돌아가신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역의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거절당하고 말아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에는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뉴스에서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렇게나 가까이에도 있다. 지금 살아있는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수도권에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수도권에 사는 우리는 15분 내로 갈 수 있는 종합병원이 여러 곳 있다. 그중에 하나에서 빠르게 치료가 가능했던 덕분에 지금까지는 큰 후유증 없이 회복해나가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만 정말 다행일까? 사는 지역이 어딘지에 따라서 생사가 결정 나는 세상은 정말로 괜찮은가?


나는 지금 임신이나 큰 병이 없는데도, 잔병치레가 많아 자주 한의원, 정형외과, 여성의원,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를 돌아다닌다. 가끔 서울에 있는 유명 병원도 찾아갈 수 있고, 때로는 같은 진료과라도 병원을 두세 군데 다니기도 한다.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병원이 휴무이면 바꿔가면서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이런 호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역에서 살아갈 때는 의료 인프라 부족과 현대의학의 한계를 절감하며 의료자립을 위해 대체의학이나 한의학에 몰두하기도 했었다. 아마 그저 잔병치레만 겪는 정도였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무릎 파열, 가족들의 큰 병치레를 연달아 경험하다 보니까 이제는 지역에서의 삶을 고려하다가도 멈칫거릴 수밖에 없다. 지역의 상황은 그저 호사를 못 누리는 것을 넘어서 치명적이다. 말 그대로 생존 불가능.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건 뇌출혈 환자를 거절한 지역의 병원의 탓도 아니고, 지역에서 사는 사람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그저 이렇게나 불균등한 의료체계를 가진 사회가 문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지역에서의 삶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을 바꿔나가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펼쳐진 삶이 불가능하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당장 목숨이 위험하다면 말이다. 지역에 살면서 지역에서의 삶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언니가 자랑스럽고 멋지고,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불가능성 또한 절감한다. 수도권으로 오는 게 어떨까 고민이 들었다는 언니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 말에 너무나도 안도해 버리는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역에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도시를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처럼 지역 소외현상이 두드러지는 시기에는 그 소외를 견딜 만한 몸과 마음을 가진 일부만 (아마도 돈과 튼튼한 몸과, 뜻을 가진 이들이)에게만 시도할 수 있는 삶인 건 아닐까. 작년에 이사할 때 이번 기회에 지역에 가자고 제안하자, 나이가 들수록 지역에 가기 어려워진다던 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결국 우리는 바로 옆동네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수도권의 삶이 얼마나 지속가능하냐고 물으면 실은 그것도 쉬이 대답하기 어렵다. 언니의 병명을 찾아낸 큰 병원은 가장 빠른 의사를 예약해도 한 달이 걸렸다. 만약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야 했겠지. 전국에서 명의를 찾아 몰리는 큰 병원들은 때로는 의사를 만나는데 반년이나 일 년이 걸리기도 한다. 도시에 있는 산부인과를 오가는 친구는 주변 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해서 인산인해를 뚫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 환자가 몰려 병상수가 부족하거나 의료진이 부족해 일어나는 응급실 거절 또한 지역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의료현실이 개선되어 수도권이 아니어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이 갖춰진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도시의 산부인과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서울의 큰 병원'에 몇 달씩 기다리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즐비한 피부과들이 사라지고 대신에 단 한 명의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작은 지역에도 의료진들이 배치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응급 의료 체계가 재조정된다면 어떨까? 도시에 인구가 조금씩 줄고 시골에 인구가 늘어 두 곳 모두 살기 좋아지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니 결국에는 지역에서의 좋은 삶이 도시의 좋은 삶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그러니 우리 도시에 살던 지역에 살던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고. 지역에서의 존엄한 삶을 꿈꾸자고. 그렇게 말해보고 싶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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