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연기

by 샴스 Shams


비자발적 금연을 한지 두어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면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심하게 허리를 삐끗했고, 이후로는 담배를 피워도 두세 모금째부터는 맛이 없었다. 담배가 그리워서 자꾸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그리워하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뀐 건 나인데 괜히 담배를 탓한다. 내가 사랑하던 연기의 맛을 돌려받고 싶었다. 그건 누구에게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회의하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한 날에도. 강아지 산책하다가도, 친구랑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도, 운전하다가도, 짜장면 먹고 배불렀을 때도, 숲에 있을 때나 계곡에 놀고 나왔을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담배가 피고 싶다. 늘 옆에 있어주었던 연기가 없으니 나는 좋은 친구를 잃은 기분이다. 어느 때나 놓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를.


내가 아직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시절, 담배 피우는 친구에게 왜 피우냐고 묻자 그는 "그냥 불량식품 같은 거야"라고 대답했다. 내가 먹어치웠던 불량식품들과, 불량식품 같은 관계들을 떠올린다. 먹어도 허기지고, 점점 더 안 좋아졌고, 그래서 더 찾았다. 재떨이랑 뜯지 않은 담배들을 처분하면서도, 몇 대를 피울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은 남겨두었다. 언제든 마음이 생기면 한 모금 할 수 있도록. 육식과 멀어졌던 때처럼, 혹은 전 애인과 헤어졌던 날처럼 얼마나 더 큰 역겨움이 있어야 나는 불량식품과 불량식품과 같은 관계, 그리고 담배와 이별할 수 있으려나. 할 수 있는 건 눈을 깜빡이며 창문을 바라보는 것뿐.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어제는 금연했다고 하니 축하받았다. 그래. 고마워. 근데 아냐. 금연이 좋다는 건 알지만 난 지금 친구를 잃어서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고. 모닥불을 피울 수 없는 세상 대부분의 공간에서 마이크로 모닥불이 되어서 불멍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친구라고. 흩어지는 연기들은 제사와 의례의 신비로움을 떠올리게 했고, 닿을 수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물성의 경계에 있는 무언가를 만나는 경이로움도 있어. 연기는 세상에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야. 어디에 가든 풍경과 연기가 어우러져 새로운 관경을 만들어내는 것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어. 깊이 들이쉬면 숨이 쉬어지고 내쉬어지면서 머릿속에 어지러운 말들이 폐 속으로 닿으며 호흡에 의식을 둘 수 있는 편안함도 있다고. 그리고 일할 때면 화면 속 글과 이미지의 세상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나는 살아있고, 땅 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사람들과 소소한 안부와 스몰토크, 그리고 침묵도 나눌 수 있게 해 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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