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자긍심

by 샴스 Shams

쥐 오줌 냄새, 곰팡이 냄새, 잘못 마른빨래 냄새, 연탄 냄새, 흙냄새, 쓰레기 태우는 냄새. 매미 소리, 개 짖는 소리, 티브이 소리, 보일러 소리, 광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 구석구석 다니는 커다란 회색 쥐, 음식물에 모여드는 개미 떼, 곳곳에 거미줄, 찢어지고 구멍 난 도배장판, 이상하게 덧대진 벽과 창문들. 미로 같은 골목골목 앉아서 부채를 부치고 있는 사람들, 동물과 동물의 사체. 가난의 냄새, 가난의 소리, 가난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몸에서 풍기는 체취처럼 감출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는, 증오하고 사랑하는 가난.


능곡 전화국 사거리. 언젠가 초가집과 흙길 사이에, 눈에 띄는 빨간 벽돌집이었을지언정, 이제는 높은 아파트와 커다란 도로 사이에 얼마 남지 않은 옛날 집.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시골 같고 시골이라 하기엔 너무 도시인 곳. 이런 곳을 달동네 혹은 슬럼이라 하던가. 이곳이 바로 나의 가난의 고향.


마을 안에서만 살아가는 동안 가난한 줄도 모르고 행복하기만 했다. 반갑게 인사해 주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마당에서 꽃과 풀을 붙잡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사랑했다. 집 옆 기찻길은 놀이터였다. 그렇지만 마을 밖에 삶과는 달랐다. 반경이 넓어지며 나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사랑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싸움, 분노, 무기력, 술, 담배, 죽음은 가난과 함께 팔리는 묶음 상품이었다. 뒷집 아주머니는 밤만 되면 남편과 싸웠다. 어느 날은 큰 소리가 났고, 어느 날은 장독대가 깨져 있었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반갑게 맞이하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앞집 아저씨는 늘 혼자 술을 마셨다.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그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골목길을 빼꼼 보고 나서 지나다녀야 했다. 부모님이 돈 버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 할머니 손에 컸다. 그는 늘 화가 많았다. 나도 덩달아 화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이곳에서 탈출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학군이 좋다는 학교로 날 보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오는 친구들과 출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숨기긴 쉽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숨길 마음조차 없었던가. 비싼 교복의 그럴듯한 핏을 서로 견주는 동안 이미 수년을 입어 소매가 터져버린 구식 교복을 물려받아 입었다. 300여 명이 되는 같은 학년 중 유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연탄난로 위에 냄비가 타는 바람에 교복에 탄내가 잔뜩 베었다. 그 냄새는 온 교실을 물들였다. 문을 여는 사람마다 얼굴을 찡그린다. 누군가 묻기 전에 말한다.


“어젯밤에 냄비를 태웠어.”


들키는 것보다 먼저 고백하는 편이 아주 조금 났다. 그러나저러나 내 속은 냄비보다 더 까맣게 타버렸다. 하지만 탄내 나는 교복은 옷이 아니라 가죽 같았다. 벗겨지지 않는 가난의 냄새는 옷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흘러넘치는 가난의 수치심에 서서히 영혼도 적셔진다.


많은 날들을 삶을 저주하고 떠남을 갈망하며 보냈다. 가난이 미운 것인가, 사람이 미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스스로가 미운 것인가. 일단 동네를 떠나는 것은 도움이 되었다. 친구네 가는 길은 흙 한 줌 안 보이는 커다란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꽃씨나 풀, 낡은 미미 인형을 가지고 노는 대신에 새로 생긴 놀이터나 컴퓨터를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안은 환하고 화장실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욕조에 물을 채워서 누워보고 싶었다. 쭈그리지 않고 세면대에서 우아하게 세수를 해보고 싶었다. 가족에게 전화가 와서 화를 들을 때까지 버텼다. 조금이라도 늦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집구석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면. 떠날 수 있다면.


그 같잖은 기도를 들어준 하늘에 감사해야 할지.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멀어질 수 있는 시골의 기숙사 학교로 도망갔다. 이곳에서는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과외도 학원도 올림피아드 입상 경력도 필요 없는 곳이다. 화내는 할머니도, 알코올중독 아저씨도, 부부싸움 하는 뒷집 부부도 없었다. 쥐 나오고 비도 새는 집을 떠나서 새로 지은 목조 주택에서 지낼 수 있었다.



우습게도 이곳에서 가난은 유일한 자랑이 되었다. 다른 삶을 살았던 기록이라며. 돈이 없다고 하니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언젠가 다들 놀랄까 걱정하며 집에 데리고 온 친구들은 이렇게 멋진 집은 처음이라고 말해주었다. 낡은 물건과 옷은 빈티지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이게 부끄러운 게 아니고 특별한 것이라니. 덕분에 이 가난한 마을을 좋아하게 된다니. 익히 익혔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습관을 시골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다. 풀과 나무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경계에서 살았던 경험이 빛이 났다.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이었다. 억울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곳에서 자긍심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딱히 어찌할 요량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어떤 친구들은 나만큼 가난하지 않아도 대학에 가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일을 찾아가거나 지역에 살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도 계속 시골에 살면서 공동체 활동을 했다. 농사를 짓고 풀을 뜯어서 먹을거리들을 마련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풍성한 한상이 차려졌다. 옷은 기워입으면 더 마음에 들고 소중해졌고, 스스로 만든 가구들과 손때 뭍은 물건들이 늘어났다. 든든한 친구이자 동료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이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뒷배가 되어주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유학이나 여행길에 오르기도 하고, 집을 사기도 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구할 수 있었다. 학력도 경력도, 자격도 없지만 찾아주는 이들이 있었고, 통장에 한 푼도 없지만 부족함도 없었다. 가난이 조금씩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가난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난한 이야기들.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의 타래. 질투와 자격지심. 미움. 성폭력… (이뿐만이랴) 공동체의 맛은 괴로웠다. 사랑하고 미워했던 마을을 떠나온 것처럼 몇 번을 커뮤니티를 만들고 망치고 미워하고 떠나오는 경험을 했다. 모처럼 부자였던 그 자리에서 내려오니 다시 가난이라는 익숙한 자리로 돌아온다. 내몰린 존재들은 삶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삶이다. 함께 책임져주는 이들, 함께 돌보는 이들이 없이는 도저히 이 삶을 살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한가? 몇 번이나 함께 살기의 불가능성을 맛보았다.


자긍심은 나를 땅 위로 안착 시켜주던 중력이었다. 그리고 떠나오거나 떠나가는 식으로 무중력의 시대는 계속 찾아왔다. 무중력자의 삶은 서러웠다. 아니,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무거워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친구네 집으로 도망가듯 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영성의 세계로, 외국으로, 화면 속으로. 깊은 우울로. 이것들은 때로는 자긍심을 기억해 내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비슷한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한국은 답답하고 외국에선 외로웠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에는 너무 모자랐고, 대안을 말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혼자서는 무력했고 함께하면 괴로웠다.

시골에서는 너무 도시인이었고. 도시에서는 무중력자이다.

가난하다고 하기에는 부자였고, 부자라고 하기에는 가난했다.


어느 곳도 안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에는 가난이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동기이자 삶 그 자체였다. 가난에서 가난으로 이어지는 삶의 빈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차마 다 담을 수조차 없는 이야기의 산. 나를 데려다주는 곳은 어디인가. 가난이 밉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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