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열 살 아래의 연인이 있다.
작년 가을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이사를 했다. 오래된 집에서 형편에 안 맞는 큰집으로 하는 이사였다. 그래서 수십만 원이라는 입주 청소 대신에 그와 친구들을 불러 손수 청소를 했다. 아침부터 네 식구의 살림짐을 싸고 청소를 하고 가구를 나르고 짐을 풀었다. 난장판이었지만 오늘부터 여기가 집이니 죽으나 사나 어떻게든 잘 수 있을 정도를 만들어야 했다.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오던 그날 저녁 지쳐 나가떨어진 그가 말했다.
“스물세 살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지만 여긴 내 집이었으니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조금 슬펐고, 미안했고, 망연자실했다. 그날은 내게도 쉬운 날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간 집과 집 밖에서 이보다도 더 고단한 하루들이 너무나 많았으니 차마 이 정도로 지쳐서 못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스물세 살이든 서른세 살이든 예순세 살이든 세상이 가혹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가혹함에 무뎌지는 방법을 배운다. 가혹함을 당연함으로 학습하고 나면, 마땅히 세상에게 혼쭐 나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 정도로 힘들다 하면 안 돼. 다들 그렇게 사는데 말이야. 그렇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오진 않았다. 그저 재미없는 무용담들이 늘어날 뿐이었다. 서른셋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혹독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혹독한 사람은 본의 아니게 연인에게도 혹독한 날들을 선물한다.
이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보다 열 살이나 많은 사람의 시선과 경험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어려워하고 있을까. 그는 분명히 늘 자신의 최대치를 하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매일매일이 그럴 것이다. 온 힘을 다했지만 모자란 기분.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데도 늘 닿지 못하는 기분. 어쩌면 영원히 가까워지기 어려울 십 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낸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