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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장강명 연작 소설집

by 계쓰홀릭 Jan 14. 2025


  장강명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작년 말까지 듣던 '단편 소설의 세계'라는 글쓰기 수업에서였다. 소설 쓰기의 기본적인 형식도 잘 갖춰오지 않는 것에 대한 처방으로 작가님이 '단편소설 필사해 오기' 과제를 내주신 덕에 함께 수강하는 다른 분들의 소설 취향을 조금 엿볼 수 있었는데, 꽤 신선한 글을 과제로 써오던 젊은 수강생이 필사해 온 단편소설이 바로 장강명의 '현수동 빵집 삼국지'였다. 문단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그리고 주요 대사 정도만 필사한 것이었는데도, 현수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세 빵집의 경쟁과 몰락(?)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가 생겼다. 소개 말미에 그 수강생이 말했다.

  "이 소설은 장강명 작가님의 '산 자들'이라는 연작 소설집에 수록된 것인데, 책에 있는 소설이 다 괜찮았어요."

   나는 얼른 공책에 책의 제목을 메모해 두고, 스마트폰을 꺼내 우리 집 앞 도서관에 있는 그 책의 상태가 '대출가능'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1부 자르기
알바생 자르기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

2부 싸우기
현수동 빵집 삼국지
사람 사는 집
카메라 테스트
대외 활동의 신

3부 버티기
모두, 친절하다
음악의 가격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작가의 말


  목차는 위와 같다. (yes24에서 발췌) 책 제목인 '산 자들'이라는 단편은 따로 없어서 궁금했는데, 이것은 '공장 밖에서'에 나오는 표현이었다. 어느 자동차 회사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게 된다. 선택받은 자와 버려지는 자. 공장 내 구성원 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구조조정 대상이 아닌 사람들을 '산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일어났던 어떤 자동차 회사 이야기를 모티브 삼은 듯 했다. 사람들이 모여 집단 농성을 하고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뉴스로만 접했는데, 마치 그 현장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알바생 자르기'를 읽으면서는 고향동네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하다가 폐업한 초등학교 동창이 생각났다. 장사도 안되는데, 근태가 엉망인 알바생 하나 자르려다가 고용노동부에 신고도 당하고 조폭 같은 남자친구가 나타나서 협박도 하고 '별점테러' 같은 방식으로 집요하게 괴롭혀서 결국 돈을 쥐어주고 마무리했다던 자영업자 녀석이다. 알바생에게 주는 월급도 만만치 않은데 장사도 안되니 끝내는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동창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차며 '개념 없는 젊은 것들'을 흉보아 주었었다. 작가는 이 글에서 그런 알바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특별히 누구의 편을 들지는 않는 태도를 보여주어서 나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알바생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근로소득자(혹은 준비생)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제각각의 사연이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다. 잘 나가던 부서가 하루 아침에 해체되어 자회사로 출근을 하거나 멀뚱하게 벽만 보고 자리를 지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학교 내부 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대외 활동'에서 스펙 쌓기에 열중하다가 이 사회의 쓴맛 단맛을 알게 되는 사연. 아나운서 시험을 보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의 방송국을 다니며 면접을 닥치는 대로 보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팽팽한 긴장과 은근한 견제의 세계.

  

  장강명의 '산 자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입장은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 상황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구 하나 악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영웅이라고 할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 밥그릇 싸움' 앞에서는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그래서 속으로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적 있는데' 하고 무릎을 탁 치며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 하는 소설들이다.


  서평을 쓰면서 조사해 보니, 장강명 작가님은 '한국이 싫어서'와 '댓글부대'를 쓰신 분이라고 한다. 나는 어설프게나마 한두 편의 단편 소설을 쓰면서, 내 경험과 삶이 묻어나지 않는 글은 무척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었는데 이 분은 어떻게 이런 다양한 직업군에 풍덩 들어갔다 나온 듯한 이야기를 잘도 풀어냈을까? 읽으면서 궁금했는데 이에 대한 답은 마지막 챕터 [작가의 말] 부분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해당되는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소설을 쓰면서 계속 자문을 구한다는 거였다. 심지어 '음악의 가격' 편 뮤지션과 만나는 부분에서는 작가 본인이 등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들이 이어진다. 뮤지션이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근로자들에 대한 연작 소설을 쓰고 있어요. 지금 마지막 편을 구상 중이에요." 하는 식의 대답이 나와서 피식 웃어버린 나다. 심지어 정말로 이게 마지막 편인 줄로 깜박 속아버렸는데, 뒤에 한 편이 더 있어서 조금 놀랐다... (하하). 음악 시장은 음반을 판매하던 시기에서 - 불법 다운로드 시기를 지나 - 요즘은 무제한 스트리밍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대한 음악인들의 속사정이랄까? 그런 것을 대화를 통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글 속의 작가(장강명이라 짐작되는)는 소설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아직은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작가는 뮤지션보다 본인이 조금은 낫지 않나 하는 자기 위안을 하기도 한다.


  단편소설은 뭔가 뚝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장편소설을 더 좋아했었는데, 단편소설 쓰기 교실을 다니면서 단편만의 강한 흡인력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 좀 주목받는다 싶은 젊은 작가들의, 짧은 호흡 안에서 밀도 있게 이야기를 펼쳤다 접는 기술에 매번 감탄하곤 한다. 더군다나 그 단편의 소설들이 모여 하나의 큰 주제를 보여준다는 것은 마치 퍼즐 조각을 끼워맞춰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게 느껴진다. 퍼즐 조각 하나 하나도 각각의 메세지가 있고 독립적으로 보아도 훌륭한데, 그것들이 합쳐져 시너지를 내는 모습은 마치 연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심 있는 작가의 다른 작품도 연이어 읽는 것을 좋아해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도 한 편 빌려두었다. 장편에서는 긴 호흡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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