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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서평 01화

[서평]사람과 세상을 잇는 따뜻한 이야기

천수이 변호사 <사랑 없이 법을 말할 수 있을까>

by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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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화장실 앞 한평짜리 법률상담소

법률은 우리 삶을 규정하고 보호하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특히 법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의 벽을 허물고 따뜻한 인간적인 시선으로 법률을 풀어낸 책이 있다. 바로 천수이 변호사의 구청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법률 상담소다. 이 책은 단순한 법률 상담 사례집이 아니라, 삶의 굴곡과 인간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법의 빈틈을 채우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법보다 사람이 먼저다: 천수이 변호사의 이야기

천수이 변호사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처음 출근한 곳은 거창한 법무법인이 아닌 구청 복도 화장실 앞 작은 법률 상담소였다. 무료 법률 상담소에는 법의 보호가 절실하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노숙자, 일용직 노동자, 가정 폭력 피해자, 상속 문제로 고민하는 노인까지, 의뢰인들의 사연은 한결같이 무겁고 안타까웠다.

책에서는 상담 초반의 어설픔과 법적 한계 앞에서의 좌절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어서 그저 손 한번 잡아 드리는 것이 전부였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법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도 의뢰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변호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상의 법, 그리고 인간의 온기

이 책은 단순히 법적 절차나 사건 해결 과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상담이라는 장을 통해 사람과 세상이 어떻게 얽히고 풀리는지를 보여준다. 등장하는 사연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돈 문제로 관계가 파탄 나고,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법적 절차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러나 상담소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는 법의 냉정함 대신 인간적인 연대와 공감이 녹아 있다.

특히 의뢰인들이 들고 오는 삶의 향기를 묘사한 부분은 책의 백미다. 중국집에서 양파를 까며 모은 쌈짓돈을 빌려줬다 떼인 아주머니에게서 나는 찐득한 기름 냄새, 반지하 고시원 청년의 눅눅한 곰팡내, 건설 노동자의 시큼한 땀 냄새까지. 이 향기들은 단순한 후각적 표현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버텨온 고단한 흔적들이다.


법이란 기성복과 같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

천수이 변호사는 법을 "기성복"에 비유한다. 법은 정해진 틀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개개인의 삶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변수가 존재한다. 아무리 법이 완벽해 보여도 사람마다 다른 치수와 형편이 있기 때문에 법의 틈새는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법은 보편적 원칙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조율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법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한다. 법이 단순한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얼마나 유연하고 인간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법의 역할

책 속에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폐지를 줍다 고급차를 긁어버린 할머니, 억울하게 전과를 안고 살아가는 노숙인, 폭력을 피해 도망친 여성이 과거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노력 등.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법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법률적 해결책이 반드시 의뢰인의 삶을 100%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귀 기울여 주는 변호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상담소에서 변호사가 내어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의뢰인의 마음을 녹이는 장면들은 법이 아닌 사람의 온기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법률 상담소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단면

구청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법률 상담소는 단순히 한 변호사의 경험담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창이기도 하다. 경제적 약자들이 처한 현실, 법률의 사각지대, 그리고 법을 대하는 일반인의 불안과 무지를 조명한다. 저자는 상담을 통해 그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때로는 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들까지 고민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법이 단순한 규칙의 집합체가 아니라, 현실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보살필 수 있는지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법이란 무엇인가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는 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법은 단순히 사람들을 처벌하고 규율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임을 일깨워준다. 또한 법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한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것은 법률적인 조언을 넘어선, 인간적인 온기와 공감이다. 법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법의 정신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법의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깨닫게 되고, 법률가의 역할이 단순한 규칙의 적용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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