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ep3 협상가 지대리4

by 밀크씨슬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 회의실에서 나온 지대리는 오늘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점심시간에 지대리는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조금 부풀리는 것 정도는 귀여운 애교 같은 것이다. 실제로는 거의 3시간 내내 심상무 혼자 떠들어대긴 했었다. 그래도 결정적인 부분은 제대로 먹혀들었으니 그 부분을 좀 맛깔나게 포장한다. 워낙에 잘 짜인 플랜 덕에 큰 위기는 없었지만 나름 고난과 역경도 살짝 섞는다. 지대리는 썰을 푸는 데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야기꾼이다. 아주 작은 이야기도 지대리를 거치면 거의 영웅설화가 되곤 한다. 이 재능을 지대리 본인도 잘 알고 그걸 정말 적절히 잘 활용한다. 음식이나 이야기나 그 맛을 살리는 건 결국 MSG가 다 하는 것이다.


심상무는 고민이 깊다. 사실 심상무도 급여인상이 되지 않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단지 대표가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기존에 인상안 기안이 오래전에 대표에게 올라가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이번엔 인상을 시켜줄 생각이 없다고 단정 지었을 뿐이다. 오랫동안 모셔왔지만 아직도 이런 부분은 의문이었다. 작년에는 매출이 소폭 줄었음에도 평소만큼 인상을 해줬었다. 올해는 오히려 증가했음에도 인상, 인센티브 등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심상무도 궁금해서 먼저 여쭙고 싶다. 직원들이 물어볼 때마다 그저 기다려 보라고 하는 것도 싫다. 하지만 그가 머뭇거리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는 대표와 단둘이 식사하는 자리였다. 지금처럼 결재는 올렸지만 오랫동안 답을 주지 않은 상태였다. 급여 인상, 인센티브 지급에 대해 의중을 물어봤었다. 그러자 대표는 대답 없이 심상무를 힐긋 쳐다볼 뿐이었다. 이 눈짓이 말하는 바를 심상무는 잘 알고 있었다. '못 들은 체 해줄게. 한 번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해는 급여도 인센티브도 지급되지 않았다. 물론 심상무가 말을 꺼내서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대표 앞에서 급여얘기를 다시 꺼내기 어렵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고민하는 심상무의 머릿속에 '침묵이 금이다.' 이 격언이 다시금 맴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대표도 침묵으로서 거절한 셈이다. 대표도 할말이 많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름 잘 참아내어 위엄을 지킨 것인지 모른다. 침묵은 생각보다 많은 쓸모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말을 참는 것이 말을 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어서 과묵했던 사람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할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말을 잘하는 건 배워서 될 수 있으나 침묵은 영영 배울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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