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지령 Aug 08. 2023

일상 속 눈부시게 빛나는 하루

일상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

                                                   -프란츠 카프카.-


온 세상이 포근한 이불을 덮은 것처럼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보름이와 도서관에 함께 갔다가 집으로 걸어오는 길.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보름이와 걸으면 20분 거리가 1시간 거리가 된다. 우리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껴서 추위로부터 자유로웠다. 추위로부터의 자유는 우리가 눈이 오는 길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했다.


우리는 옷소매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결정체를 구경했다. 보름이는 내게 눈 결정체가 우리의 지문처럼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40년 남짓하는 시간을 살았어도 나는 눈결정체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언젠가 들었다 해도,  흘려버렸을 지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눈은 다 똑같아 보이는 그저 같은 눈에 불과한데, 자세히 보면 다른 거였구나. 자세히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눈 속에도 있었다.


공원 주차장을 지날 때 나는 아래쪽에 있어 못 봤는데 자동차 앞범퍼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름이가 발견했다. 고드름의 길이가 동굴에 달린 신비한 수정처럼 꽤 길고, 반짝인다. 마치 혹독한 추위에도 아름다움은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듯,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보석 선물 같다. 우리는 따기도 쉬운 이 고드름을 신나게 땄다. 이차, 저차의 범퍼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수정 따기는 꽤 재미있었다. 아래로 흐르는 물의 흐름까지도 얼려 잡아둔 고드름을 보고 있자니 어느 한순간을 사진으로 잡아두는 우리의 마음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오는 길에도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우리는 원 없이 눈을 맞으며 눈 쌓인 길을 걸었다. 눈 쌓인 길을 걷는 소리는 '뽀드득' 과는 다르다.  보름이는 '뽀드득'은 눈이 얕게  덮인 길을 걸을 때 나는 소리라고 말하며  눈이 많이 쌓인 길을 걷는 소리는 '뽀드득'은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눈 속에 발이 빠지며 걷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우리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푸드득 푸드득'이라는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딴 세상으로 만들어버리고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한없이 하얗고  순수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고개를 들어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꼭 누가 뿌려주는 떡고물 가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떡고물을 받아먹듯  혀를 날름날름 내밀어 눈을 받아먹었다. 혀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은 아무 맛도 안 났다. 보름이는 우리가 눈을 먹었지만  결국은 구름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누가 눈 맛을 물어보면 아무 맛도 안 난다고 하지 말고 구름맛이라고 할 거란다. 눈은 구름에서 떨어진 거니 눈 맛은 구름맛이라는 거다.  아무 맛도 안 나니 구름맛은 또 물맛이라고  했다. 눈 맛은 구름맛 구름맛은 물맛!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아이다움의 논리가 귀여워  깔깔대고 웃었다. 보름도 나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었다.

나는 정확한 지식을 굳이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정확한 지식을 욱여넣어 이 순간을 구겨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정확한 지식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주 보며 깔깔대는 이 순간의 이미지만이 아이 기억에 남을 것임을 알기에....


나무에 쌓인 눈을 보며 장난기가 발동해

가지를 흔들어 보름달에게 눈발 소나기를 맞게 하였다. 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쏟아지면서 눈의 결정들이 한꺼번에 반짝거렸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의 불꽃처럼.... 환상적이었다. 보름이는 별빛이 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화롭게 걸어오는데 안절부절못하며 보름이가 하는 말  "엄마~ 근데 큰일 났어. 나 오줌이 너무  급해~ 쌀 거 같아~"  화장실은 한참을 또 걸어가야 하는데... 이건 진짜 어쩔 수 없다!! 나무가 많은 숲안쪽으로 들어가 사람의 시선이 못 미치는 눈밭에 오줌을 뉘었다. 내가 망을 봐주고 보름이 급하게 바지를 내려 쉬를 하는데 어찌나 급했는지 살짝 바지의 앞섶이 젖었다. 보름가 어느 정도 큰 후에는 소변을  참을 수 있게 되어 노상방뇨를 한 적이 없었는데 너무 급해 바지를 체 내리기도 전에  오줌이 나와버려  바지가 젖어버렸으니 그 상황이 너무 웃겨 또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눈 내리는 날, 보름이와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 눈을 뜰수없게  반짝거렸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프란츠카프카의 말이 몸소 느껴지는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

평범한  일상이 내 인생의 전부라면 우리는 어떤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이라는 시간을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로 너무 많이 소비하지 말고, 나의 현재를, 순간순간을 살기. 소박한 것에서 감사함 찾기. 자체의 나로 살아가기, 혼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음을 늘 인식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누며 살아가기(가족이든, 이웃이든, 친구든, 어떤 형태로든), 감각하기(내가 즐거운 것, 음악 듣기, 걷기, 책 읽기 뭐든 내가 느끼는 것은 괜찮다)  


행복이 뭐 별거인가... 오늘 같은 날이지.

'눈이 부신 날'이란  말은 이런 날을 가리켜하는 말이 아닐까? 하루 중 어느 한때를 오롯이, 온전하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며, 이야기 나누고, 마주 보며 웃는 일상 속에 눈이 부시게 빛나는 하루가 있다.





* 엄마의 그림책

일상의 행복을 말하는 그림책.

그림책은 말하고 있어요.

상처가 주는 부끄러움. 딱지가 남긴 행복.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고요함. 날아가는 행복.
내 것 네 것 가르기. 우리 것의 행복.

안 좋은 일들도 지나고 보니 그 뒤에는  느껴지는 행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는 사소한 일상 속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어디에나 있었어요.

아픔과 슬픔과 어려움 뒤에도 분명  발견되는 행복이 있다는 긍정을 믿게 하는 그림책.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였습니다.^^


액자에 넣어 둔 것 같은  그림구성이 귀여워요.

"날마다 날마다 놀라운 일들이 생긴단다"

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림책은 우리가 지나쳤던

모든 사물에 얼마나 놀라운 사랑과 정성이 숨겨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땅이 밀을 키우고  밀이 밀가루가 되어서  놀라운 일이 생긴 거란다. 놀라운 빵!"

" 새알 하나가 있었는데 따뜻하게 품어줬더니 새가 된 거란다.  놀라운 새!"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은 누군가의 땀과 정성이었어요. 

이 그림책을 보니 사소한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는 기적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독자님의 일상에 행복을 더해주는 사소함은 무엇이었나요?그 사소함이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두가 감사함이네요~^^

일상의 감사함을 넌지시 알려주며 미소 한 모금 머물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아줌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