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오늘 복도에서 친구랑 뛰다가 같이 뛴 친구가 나랑 부딪혀서 엉덩방아를 찧었거든. 복도에서 뛰었다고 반성문을 썼는데 같이 뛴 친구는 안 쓰고 나만 쓰게 하셨어.”
하교 후 집으로 들어오는 아이를 맞이하며 가방을 받아 들면서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쓴반성문에 부모님의 확인사인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대체적으로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인 아이는 열 살. 자신의 잘못을 엄마아빠에게 들키기 싫을 수 있는 나이. 아이는 부모님의 확인사인을 받아오라는 말이 학교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활달하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소심하고 여린 아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마도 그 일이 있은 후 학교에서 아이의 시간은 손에 박힌 가시처럼 계속 신경 쓰이는 불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억울하다는 듯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를 보며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함께 뛴 친구가 아이와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는 반성문을 쓰게 하지 않았다는 말에 나도 속으로는 선생님에 대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그대로 내 비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안전도 책임져야 하거든. 그 친구가 넘어진 것만 보시고 같이 뛴 것은 못 보신 것 같은데? 누가 반성문을 쓰든 안 쓰든 중요한 건 네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는 거야. 너의 마음은 엄마가 알아줄게.”라고 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지만 나조차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 데다 학교에서의 시간이 짐작이 가서 어쩐지 아이가 더 안쓰러웠다.
다음날 아침. 항상 아이가 등교할 때 교문 앞까지 배웅을 한다. 이슬을 머금은 가을의 아침공기에 풀내음이 더 짙게 풍겨왔다. 풀내음이 우리 콧속으로 스며들자 아이는 캠핑할 때 숲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콧구멍을 벌름대며 가을냄새를 들이키는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마주 보며 깔깔 웃었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우리의 기도가 절에 내걸린 전등에, 묵주나 십자가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삶의 한걸음, 한걸음 속에, 매일의 식탁에 기도는 있다.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안희연 >
나는 아이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모아 속으로 빌었다.
‘ 오늘 너의 하루가 안온하길. 모두와 즐거운 하루가 되길. 모두와 잘 지낼 수 없는 날이라면, 그 속에서 겪고 뒤척이며 너만의 힘이 자라길.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하루가 되길.’
나에게는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에 기도가 있었다. 내가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늘 간절한 마음이 되는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이란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나는 아이의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서있었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듯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의 뒷모습에서 더 이상 넘어진 아이를 달려가 일으켜 줄 수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저 조금 떨어져 스스로 일어나기를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그리고는 문득 아이가 뒤 돌아봤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으로 아이에게 위안이되고 싶다.
아이가 교실로 들어간 텅 빈 운동장에 가을 햇살이 내려앉았다. 가을 햇살이 아이에게도 환하게 비치기를. 가을 햇살에게도 기도하며,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