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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Dec 05. 2023

불안을 잠재우는 주문

잊을 수 없는 말

" 괜찮다, 괜찮다. 응가로 나오니 걱정 말아라."

바둑알을 삼켜 놀라 울고 있는 내 등을 어루만지며 할머니는 말했다. 7살 즈음, 동생과 소꿉놀이를 할 때면 바둑알이 음식으로 둔갑하곤 했다. 음식을 먹는 흉내를 내면서, 바둑알을 입에 넣었다가 삼킨 것이었다. 차갑고 동그란 것이 목에 묵직하게 걸렸다가 쑥 넘어갔다. 나는 목에 걸렸던 그 느낌에 놀라고, 목이 너무 아파서 내가 죽는 줄만 알았다.

“으앙~~” 하고 어린애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저 보드랍게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응가로 나오니 걱정 말아라~ 소화가 안 되는 것들은 다 응가로 나오니라." 할머니는 목소리의 격양도 없이, 놀란 표정도 없이,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안정된 표정과 목소리에 꽉 조였던 목의 근육이 풀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그치고 안도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다가 내가 그림책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책 북클럽에서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을 보았다. ‘시드니 스미스’는 책 속 인물의 감정을 인물의 시선에서, 다른 각도에서 다양한 각도로 보여준다. 책이 아니라 단편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을 빛의 색채를 이용해 아름답게 표현해서 그저 멍~해진다. 가난하고, 여리고, 상처받는 영혼에도 아름다움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여리고, 착한 마음을 말없이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라 보고 나면 목이 멘다.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 <괜찮을 거야>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나서는 아이의 심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차 안 유리창에 비친 아이의 얼굴에는 유리창에 서린 입김처럼 근심이 서려있다. 아이는  추운 겨울 거리를 헤맬 고양이를 찾아, 도시를 걸으며 엄마가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나직이 말한다. “어두운 골목으로는 가지 마,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통풍구에서는 낮잠을 자도 괜찮아. 빈터는 쉬기는 좋지만 가시덤불이 있어.”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담아 아이가 끝끝내 전하는 말.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두렵고 불안한 상황에 있을 고양이에게 건네는 마지막 글에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자주 불안한 나에게 하는 위로 같아서. 어릴 적 나에게 건네는 할머니 말 같았다. 나는 분명 어릴 적 할머니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고3 때 수능을 망치고, 붙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재수를 결정했다. 수능공부를 다시 하면서 그 시절, 나는 요란한 꿈들에 자주 시달렸다. 답을 죄다 밀려 쓰고 아무리 OMR카드를 바꾸어 쓰고, 다시 써도 계속 밀려 써서 시간 안에 답안지를 못 내는 꿈이었다. 재수를 선택한 건 나였지만 대학에 못 갈까 봐 불안했다. 불안해서 후회하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기에 빈번히 신경성 위염에 시달렸다. 이십 대에 첫사랑과 헤어졌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겪기라도 하는 양 비애에 빠져 있었다.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고, 의기소침해져 혼자 있을 때는 자주 시야가 흐릿해졌다. 취업면접을 볼 때마다 고배의 잔을 마셨다.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나는 몇 번의 실패에 위축되어 구겨진 종이처럼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삼십 대에 결혼하고 신혼에 몇 년, 남편 직장에 따라 경상도에서 살았다. 처음 본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어데서 왔는데? 와 여까지 내려 왔노?" 그저 물었을 뿐인데 나는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무뚝뚝하고, 억양이 센 경상도 말투에 이 소심이는 누구에게 말도 걸지  입을 닫아버렸다. 내가 이방인 같아서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그동안 빚지고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억대의 대출에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 돈을 다 어떻게 갚아야 하나.’ 늘어난 대출에 라면만 먹고살아야 하나를 걱정했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하며 사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사는 나날이었다.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원인을 알 수없이 아팠다. 불안의 상상이 나래를 펼쳤다. ‘혹시 큰 병은 아닐까?' 그때 내가 느낀 불안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아프니 집안의 공기가 무거웠다.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할머니 말은 세월을 지나 온 내게 이렇게 들려왔다.

“괜찮다. 괜찮다… 다 지나가니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로 다 괜찮아졌다. 나는 무사히(?)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했다. 첫사랑과 헤어지니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여러 실패 후 취업도 되었다. 경상도에서 적응이 힘들었던 시기도, 아이를 낳은 후, 아이로 인해 친해진 육아동지가 있어 외롭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나서 경기도로 이사 오게 되었을 때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원인 없이 아프던 몸은 원인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나았다. 대출을 받아 산 집은 우리가 생활하는데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얼마만큼 여행도 다니고, 내가 사고 싶은 책들을 사기도 하고, 가끔 이벤트 날에는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시드니 스미스'<괜찮을 거야> 그림책을 보고, 할머니의 말이 겹쳐 들렸던 그날 이후로, 마법처럼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나중에 오는 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내가 있듯, 힘든 것도 결국은 다 지나가더라고. 그러니 조금만 걱정하고, 덜 불안해하고 그저 오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기질적으로 불안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불안을 잠재우는 주문이 생긴 것이다. 불안한 일이 생기면 나는 상상한다. 내가 조금 멀리서, 조금 높은 언덕에 서서 지금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그곳에 있는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잔잔히 말을 건넨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 엄마의 그림책

두 권의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은 빛의  눈부신 색채를 이용해 주인공의 여리고, 상처받은 영혼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분명 그림인데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요. 주인공의 시선에서, 다른 방향과 위치에서 다양한 각도로 한 상황을 보여주거든요. 잃어버린 고양이, (잃어버린 건지, 고양이가 집을 나간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아이가 고양이에게 말을 걸듯  말하는 걸로 봐서는 고양이도 야생성이 있으니 집을 나간 것처럼 보여요.) 사랑하는 존재를 걱정하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저도 안도하고야 마는 책. 저의 불안을 잠재우는 주문을  안겨준 그림책입니다. 독자님은 두려움과 불안을 다루는 방법이 있나요? 있다면 들려주세요 :)



두 번째로 소개할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은 <바닷가 탄광마을>입니다.  표지의 바다 윤슬을 보는 순간, 반짝이는 빛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혀 그만 멍~해지는데요. 탄광 마을에서만 살아온 아이는 그 너머의 세상을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빠가 그랬듯이 자신도 광부가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지요. 열린 결말로 끝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어요. 저 너머의 세상으로 아이가 나아가기를 바라며  뭉클해 저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지요.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 광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복잡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아이의 고요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바다윤슬의 풍경이 눈부십니다. 바다윤슬의 빛에 제 안에 여린 마음도 위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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