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만화는 안 된다는걸까?
그림책은 권하면서 만화는 보지 말라고 한다.
그림책과 만화의 차이가 뭘까?
말풍선? 아니면, 칸?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이상한 화요일>(데이비드 위스너, 비룡소, 2002)은 그림책인가? 만화인가?
보통 글자가 거의 없는 그림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저 정말 이상한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개구리 비슷한 것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개가 날아다니는 개구리들에게 쫓기기도 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돼지들도 날아다닌다.
그래서, 수업하기 좋다.
아이들에게 모둠별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하기도 하고,
마지막 1장을 추가해서 이어질 그림을 그려보라고도 한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좋아한다.
아니 고등학생이 이런 수업을 하고 있다니 참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자주는 아니고 시험 끝나고 잠깐 한숨을 돌릴 때,
또는 방과후 시간에 해 왔다. 이렇게 훌륭한 수업 교재가 된다.
<있으려나 서점>(요시타케 신스케, 온다, 2019)은 만화인가? 그림책인가?
애매하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의 일본 천재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그리는 상상 서점. 이라고 광고하고 있기는 하다. 만화와 그림책의 경계가 궁금하다.
그럼, 만화는 어떤가?
만화도 훌륭한 수업 교재가 될 수 있다.
시를 공부하는 시간에 함축적 의미에 대해 수업한 기억이 난다.
그 때 만화 <대학일기>의 한 장면으로 수업을 했었다.
단 2-4컷을 보며 공감하고, 웃을 수 있었다.
만화 한 컷, 한 컷 사이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찾는 수업이었다.
그리고, <포엠툰>으로도 수업을 했었다.
만화 한 컷 한 컷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의미를 써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사람의 머리가 계산기 모양이고 거기에 숫자가 쓰여 있는 장면이 있었다.
이 의미를 생각해보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돈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계산적인 사람 같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계산기에 써 있는 숫자에 주목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은행 계좌번호 같다고.
이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내용이었다.
그 학생은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이렇게 만화로도 얼마든지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림책은 되고, 만화는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도 만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언제쯤 수업 시간에 만화를 보며 토론을 하는 수업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