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된 지금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 금쪽이로 보인다. 준비물도 잘 안 챙기고 숙제도 까먹기 일쑤였다. 때로는 친구와 얼굴에 멍이 들도록 거칠게 싸우기도 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크게 바뀐 시기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교실 복도에서 길고 파란 화분에 강낭콩을 심고 관찰했었다. 강낭콩이 쑥쑥 힘차게 자라는 모습이 신기해서 물을 잘 주던 나를 선생님께서 많이 칭찬해 주셨다. 내 기억에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첫 번째 칭찬이었다. 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장래희망을 '강낭콩농부'라고 적기도 했었으니 그때의 나는 이 칭찬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선생님이 안 계신 시간에 시끄럽게 떠들거나 싸우는 친구가 없도록 바른생활부장이라는 역할을 맡기고 격려해 주셨다.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나는 강낭콩처럼 쑥쑥 자랐고, 내 학교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쉽게도 선생님께서는 그 해 다른 학교로 떠나셨다. 선생님과의 마지막에는 펑펑 울며 선생님께 안겼었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연락은 끊어졌지만 이후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름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잘 해내갔다. 그리고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에 입학했다.
교육대학 입학이 확정되었던 겨울에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은사님이셨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놀란 눈빛과 감사가 담긴 대화를 지나 전화기를 통해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영운아! 오랜만이지? 교육대학교에 입학한다며?! 정말 축하한다." 선생님께서는 거의 10년의 세월을 건너 내게 연락해주셨다. 나를 잊지 않으시고 축하해 주시는 마음에 감사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여름에도 선생님께서는 건강을 잘 챙기고 열심히 공부하라며 삼계탕을 사주셨다. 그리고 교사가 학생을 만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가 품에 안기면 꼭 따뜻하게 안아줘. 아이가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안기더라도 꼭 따뜻하게 안아줘. 선생님은 아이가 무엇은 손을 쥐고 우리에게 오든지 따뜻함으로 아이를 이끌어주는 사람이야.'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어린 나를 안아주셨을지 모른다. 그 따뜻함으로 어린아이를 잘 이끌어주시고 다독여주었다. 나 또한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교직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아프게 마음을 찔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엇나가는 아이의 말과 행동, 학교를 불신하는 학부모, 학교현장은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한 행정업무 등 교사에게 날아오는 못과 말뚝이 많다. 마음에 박히는 못과 말뚝을 가만히 두고 아파하고 힘들어 할 수 있지만 더 희망 있는 미래를 꿈꾸며 그 자리에 꽃을 심고 싶다. 마음속 상처에 꽃을 심고 꽃밭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싶다. 은사님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를 품고 꽃내음을 맡을 수 있게 키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