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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Aug 05. 2023

[교사의 시선詩選] 초등학생의 삶의 무게

쉬는 날 - 김용택

쉬는 날 - 김용택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볕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선생님은 학교 끝나면 뭐해요?"


쉬는 시간에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세희가 물었다. 정확히는 내가 퇴근하고 나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보다는 자기 삶에 대한 넋두리를 풀고 싶다는 눈치였다. 세희에 질문에 “선생님은 아내랑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가거나 하지.”라고 보편적이 답을 해주었다. “세희는 뭐 하는데?”라는 나의 질문을 기다린 세희는 회사 꾀나 다닌 어른처럼 넋두리를 시작했다.


“저는 오늘 학교 끝나고 나자마다 수학 학원 갔다가 영어 학원 갔다가 저녁에는 태권도도 가야 돼요. 그다음에는 집에서 숙제하다 보면 게임이고 뭐고 할 시간도 없다요. 주말에는 독서 논술도 가야 돼요.”


세희는 살인적인 일정을 매일매일 소화하는 처지에 대해 나에게 한참을 털어놓았다. 어른이 보내는 하루보다도 더 힘들고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서도 4~5시간 이상을 다시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이라니. 심지어 어떤 날에는 저녁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대충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먹는다고 했다. 세희가 보내는 하루들을 상상해 보니 오히려 내가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세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세희 진짜 대단하다. 부지런함의 끝판왕인데?!" 이 정도의 격려와 마음속으로든 세희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퇴근을 하고 아내와 저녁식사를 마쳤다.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다 시계를 보았다. 저녁 9시. 문득 지금쯤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갔을 세희가 떠올랐다. ‘세희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어떤 기분일까? 오늘 하루 동안에 배운 내용을 기억을 할 수 있을까?’ 괜스레 태평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죄스러웠다. 


그 주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바람이 시원하고 바깥의 햇살은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이런 가을날을 어두운 교실에 갇혀 있는 것은 자연에 대해 모독이자 추억의 낭비였다. 아이들과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에 대해 간단하게 복습했다. 


“자, 가을하늘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운동장에 나가서 가을을 찾아보도록 해요. 선생님이 시는 그냥 줍는 거라고 했었습니다. 운동장에 떨어져 있을 가을을 주워 오세요. 줍지 못하거든 마음에라도 담고 오세요.”


뜻밖에 야외 수업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시소를 타기도 하고, 운동장에 드러누워 돌돌돌 굴러가기도 하고,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 모두 얼굴이 가을 햇살처럼 빛나고 있었다.  세희는 친구와 정글짐에 꼭대기까지 올라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세희의 표정은 가을 그 자체였다. 가을 햇살 뒤로 환하게 웃고 있는 세희가 편안해 보였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그 나름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억하고 익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관계도 맺고 유지해야 한다. 매일 새로운 하루에 애쓰고 있는 아이들의 노고를 칭찬해 줘야 되지 않을까? 단순히 먹어주고 입혀주고 키워준다고 그들의 노력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오늘도 10대의 삶을 살아가고 견뎌내 주는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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