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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Feb 19. 2024

의무의 다른 이름

속박과 굴레가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사랑

01.

“이번 시험에서 백 점 맞았어. 뭐 해줄 거야?”


“학생이 공부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걸 왜 보상받으려고 해. 그리고 공부를 잘하면 네가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건 아니잖아.”



02.

“엄마, 저기에 벌레 있어. 무서워”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해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벌레보다 무서운 게 얼마나 많은데.”



03.

엄마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우리 딸 잘했어 혹은 많이 무서웠겠네 같은 응원과 공감은 어림도 없었다. 험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아주 혹독하게 대했다. 어린 시절에 원한 건 사랑과 신뢰가 담겨있는 직접적인 표현일 뿐이었는데. 드러난 말 아래 숨겨진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엄마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스스로가 이뤄낸 성취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느껴지고, 벌레에도 겁먹는 나약함을 자책했다.



반복되는 문제와 끝없는 방황 속에서 문득 스스로가 단점투성이라고 느껴졌을 때 엄마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상처받지 않으려 잊으려고 했던 문장들은 삽시간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나를 덮쳤다.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엄마였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속으로만 삼키던 생각들은 쌓이고 쌓여 어느 날의 폭발로 이어졌다.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본 적 없어. 항상 모진 말만 했잖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형태로 사랑해 준 적이 없잖아. 항상 강요만 했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싶었는데 실패였다. 그간 억눌렀던 감정 때문에 울부짖으며 말하게 되었다. 나의 말을 들은 엄마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무너져갔다. 상처받은 사람은 나인데 엄마도 같은 표정이었다. 충격받은 눈동자 뒤로 해야 할 말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몇 번 입술을 깨물고 달싹이기를 반복하던 엄마는 어렵게 입을 떼며 말했다.


“공부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경제적인 이유로 반대하면서 나한테는 공부 못 한 게 한이었어. 그런 아픔을 너는 겪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돈을 벌고 학원을 보냈어. 이렇게 너를 키운 건 내 의무였어.”



오랜 침묵 끝에 엄마가 내놓은 답은 예상 밖이었다. 표현 방법이 서툴렀다던가 방법을 몰랐다든가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나를 키운 이유를 의무라고 말했다. 시집살이, 고부갈등, 직장생활과 가사 활동의 병행, 넉넉하지 않은 살림, 끊임없이 부딪히는 가족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온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 의무라니. 벗어날 수 없어 그저 삶을 버텼다는, 모든 원흉은 나라는, 죄책감을 자극하는 단어에 엄마와의 사이는 더 멀어져만 갔었다.



04.

그날의 독서 모임에서 한 멤버는 본인에게 주어진 윤리학에 대한 사명감을 이야기했다. 현재의 직업이 주는 경제적 보상을 기대할 수도, 대학원을 입학할 가능성도 희박한 상태인데 계속해서 윤리학을 끊임없이 생각한다고 했다.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쉬웠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 순간 엄마가 말했던 나에 대한 의무가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모든 고뇌와 힘듦이 설명될 텐데 쉬이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에 둔할지도 모른다. 복잡다단한 사랑보다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의무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건 운명이라고 체념하듯이 말하지만 흔히 말하는 의무에는 강제성이 없다. 속박과 굴레는 스스로가 만들어 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 고난과 역경만 가득할지도 모르는 선택지를 고르는 건 본인의 의지이며 그 삶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사랑뿐이다. 의무가 주는 중압감에 휩싸여 기저에 깔린 사랑을 알지 못한다. 의무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05.

내가 좋아한 그와 저녁 식사를 한 후 걷고 있을 때였다. 그가 물어왔다.


- 왜 나한테 밥 먹자고 했어요?


그가 원했던 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답을 했다.


- 마음에 걸려서요. 당신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걸려서요. 어쩌면 내가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좋아해서 하게 된 행동을 이야기했다. 나중에 그가 본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한 말에 또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사랑해서 선택하게 된 결과에 대해서 말하는 엄마를. 사랑 대신 의무, 사랑 대신 도움으로 표현한 우리 둘은 닮아있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닿지 못할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다가올 미래가 힘들지라도 옆에 끝까지 남아있다는 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과 사랑 때문이다. 두근거림과 행복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이제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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