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갔던 음식점 괜찮지 않았어?”
갑자기 들려온 한국말에 예지를 부르려던 열음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생각보다는 별로던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한국인이었다. 논란이 될 말을 하지도 남이 들으면 큰일 날 만한 비밀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방금까지 예지와 나눈 대화를 곱씹어보는 열음이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리스본에서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던 열음에게는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은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기분이 나빠진 사람만 있는 이 상황에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던 열음은 치아로 괴롭히던 입술을 원상태로 두고는 예지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지야, 앞으로 얼마나 남았어?”
“앞으로 10분 정도? 근데 경사가 너무 심하다. 우리 벌써 50층 높이 올라왔다는데?”
아이폰 걸음 측정 화면에는 그날 걸은 걸음 수와 높이가 적혀있었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전망대를 다시 가려던 열음과 예지는 예상하지 못한 언덕에 진이 빠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왔던 첫 방문과 다르게 전망대의 다른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는 코스는 등산을 방불케 했다. 달동네 같은 지형에 이 동네 주민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두 사람 앞에 가던 한국인들이 안도와 탄성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발바닥에 감각을 집중한 채 걷던 열음은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골목의 안과 밖을 구분하던 스카이라인이 끝나는 지점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골목은 양옆의 건물들로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 빛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니 골목의 왼쪽에서 건물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올라온 언덕의 경치를 볼 수 있는 탁 트인 시야가 열음을 맞이했다.
“와…”
엊그제 왔었지만 낯선 느낌이었다. 한 시간 남짓하게 봐왔던 골목의 답답한 시야와 대조되어 그러리라 열음은 생각했다.
노을이 지기 전인데도 사람들로 전망대는 입구부터 붐볐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에 넋을 놓고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 꼭대기에 도달했다. 해가 길어서인지 7시가 되어도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노을이 지기 전 마지막 햇살을 즐기는 듯 보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노을이 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은 어느 무리의 사람인지 가늠하던 열음을 깨운 건 기타 선율이었다. 첫 번째 방문 때도 기타와 앰프를 들고 버스킹을 하던 남자가 오늘도 공연하고 있었다.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노랫소리에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눈앞에 보이는 경치에 집중했다. 음악에 맞춰 흔들거리는 군중 위로는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사람과 자연이 만든 경계선은 전망대 풍경에 집중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액자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