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원리의 차원에서, 실현 불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지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원과 한정적인 지혜의 한계가 일종의 대전제로서 부인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어떤 공상주의자도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현실주의자임을 자처한다. 공연한 망상을 섬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그 누구의 지지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천의 차원에서는 실질적인 공상의 단계에 도달한 허황된 담론 및 의제가 실현 가능한 방안 내지는 (독특한) 사실적 관찰의 내용으로 혼동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그 모든 것들이 실질적으로 구현되거나 사실에 비추어 검증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하는 불가피한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일련의 사실들과 그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삼고 성립하는 현실 정치와 빚어내는 마찰에도 불구하고, 또 그 영향을 모두가 목도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공상, 공론에 대한 신봉은 간단히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이론 사이에 빚어지는 마찰과 반발 작용을 자신에 대한 일련의 반증 사례로 간주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그 믿음을 확산시켜 나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실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에 관한 더욱 강도높은 조치의 필요를 요청한다. 즉, 공상에 대한 현상의 반발 작용 자체가 모종의 이상ideal과 상충하는 현실의 병증, 내지는 공상의 당위적 필요를 입증한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하나의 헛된 신념이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이제는 그 허황됨, 사실과는 무관하며 실질적인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도리어 그것에 더욱 선명하고 '사실적'인 광채를 더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한 허구이므로 어떠한 치명적인 반증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허구는 사실과의 대조적 불일치를 보일 수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부인되지 못한다. 그러한 허구 앞에서 사실은 참조되는 원본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하나의 선행하는 이미지로서 덧붙여질 뿐이다. 따라서, 본연의 사실 자체도 허구에 대한 일련의 불연속적이고도 단순한, 의미를 결여한 대비에 의해 하나의 가능성 있는 견해에 불과한 것이 된다.
공상, 공론은 사실과의 상이함, 현실에 대항하는 어떤 측면을 지님으로서 매혹성을 띤다. 다시 말해, 현실의 반-테제로서 요청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결여된 측면, 일련의 환상이 반-현실의 핵심을 이룬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현실을 모방한 모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구성하는 결여된 부분에 대한 지각, 현실에 대한 보충, 보정의 양상을 가지는 환상은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에 선행하여 이미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을 내재한다. 즉, 후행하는 모델로서의 반-현실 규정이 오히려 현실을 파생 시키는 하나의 정상성으로, 현실은 그것을 향해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일종의 가능태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러한 공론 자체의 반-사실적 규정에 의해, 회귀의 목표지로서의 정상성은 이미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가정된 정상성이 현실에 대입될때, 그것이 실질적으로 선행하는 현실의 모델에 우선할 수 없음이 탄로나게 되기 때문이다. 가정된 정상성은 오로지 일련의 불분명한 결여로 부터 표상되고 하나의 가능한 지향으로 표현되는 한에서 손상되거나 현실에 포획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공상이 가정하는 일련의 가능성과 전제된 당위는 바로 그것들이 반-테제, 현실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지향되고 있다는 점에 의해 현실로 부터 한없이 후퇴한다. 다시 말해, 공상은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과의 다분히 의도적인 불화를 조성한다. 왜냐하면 공상은 현실에 대항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상은 그것이 어떤 지향에 대해 지속되는 추구인 한에서, 다시 말해, 실현될 수 없는 이론적 가능성인 한에서 하나의 테제로서 계속 유효한 것일 수 있다. 그리하여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 대한 갈망이 자리한다. 그런데 기실 공상은 그처럼 영속하는 갈망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촉구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규정하는 현실의 결여 자체가 모종의 가정된 정상성으로 부터 연역되는 것이며, 가정된 결여에 대한 상상적 개선으로 구성된 그러한 정상성 자체는 가정되는 결여의 정도와 그 이론적인 개선의 가능성에 의해 얼마든지 잠재적으로 보강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