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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l 30. 2022

그림, 노동자와 함께하다

권리를 위한 투쟁, 파업_칸다, 베르니


아래 그림은 "비스카야의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로 스페인의 화가 칸다의 작품이다. 비스카야는 지명이다.


Vicente Cutanda y Toraya_Una Huelga de obreros en Vizcaya (1892)


끓고 있는 시뻘건 용광로가 보이고 석탄을 옮기는 레일이 깔려 있다. 굴뚝과 용광로에서는 끊임없이 수증기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엄청난 규모의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철강(금속) 노동자들이다. 19세기 말 스페인의 강 산업은 불안정했고, 노동자들은 파업했다. 그들은 권리를 외쳤고,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연대했다. 높은 곳에 올라 우뚝 서 있는 노동자가 손에 선언문을 들고 연설을 하고 있고, 그의 외침에 뜻을 같이 하는 동료 노동자들이 팔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기본권이었을 것이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수레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노동자들과 구별되는 어린아이 둘이 있다. 오누이다. 아비의 노동 해방은 곧 가족 구성원 전원의 해방을 전제한다는 메시지를 말하는 것 같다. 바구니와 와인병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하는 아비의 도시락을 챙겨 왔다. 집에 어린 동생을 혼자 둘 수 없는 누이는 동생을 데리고 왔는데, 마침 노동절 파업이어서 주위가 어수선하다. 누이는 동생을 행여나 잃어버릴까 팔을 꼭 붙들고 있지만 철없는 동생은 누이를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짐작이지만 정황으로 보아 이들 오누이에게는 어미가 없다. 남편을 통해 미리 파업을 알았을 어미가, 그 소란 속으로 아이를 심부름 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칸다의 작품은 연작의 형태를 띠고 있다.  *1893년에 그린 그림의 제목은 '전장에서'이다. 노동현장을 목숨을 건 전쟁터라 표현한 것이 그 당시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열악한 노동현장의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며 쓰러지는 노동자를 통해 파업의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빗자루를 들고 허드렛일을 하는 어린 소년공 모습도 보인다.


*Vicente Cutanda y Toraya_Gudu-zelaian (1893)

 

**1894년에 그린 '5월 1일을 위한 준비'는 위의 파업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노동자끼리 주고받으며 결집하는 파업 준비 과정을 그렸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노동자가 글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관련 문건을 읽어주고, 삼삼오오 모인 노동자들이 진지하게 듣고 있다.


**Vicente Cutanda y Toraya_Preparativos para el uno de mayo (1894)


***1895년에 그려진 '에필로그'는 정당한 권리 보장을 위해 철강 노동자들이 연대 한 5월 1일 노동절 파업 이후 일터로 복귀한 모습이다. 그들은 그 무엇도 파괴하거나 와해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들을 폭도라 일컬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본권을 외친 후, 다시 일터로 복귀해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낼 뿐이다.


***Vicente Cutanda y Toraya_Epílogo (1895)


베르니는 아르헨티나의 화가로 그의 작품 Manifestación은 시위, 항의, 표명 등으로 번역된다. 시위나 행진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매우 독특한 구성으로 시위를 그렸는데 군중들이 큰길을 따라 관람자를 향해 행진한다. 저 멀리 작은 피켓이 보이는데 '빵과 노동'이란 짧은 문구로 그들의 요구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빵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실업자들이다.


Antonio Berni _Manifestación (1934)


많은 얼굴들이 클로즈업되어있다. 깊게 파인 주름, 검게 그을린 피부, 여성과 아이, 분노나 열망이 담긴 눈빛이라기보다는 조금은 허망하고 우울한 눈빛은 그들의 어려운 삶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추켜올린 칸다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시위다. 나는 이 그림 속 시위가 투쟁이 아닌 슬프고 고요한 장례식 행렬과 같다고 느꼈다. 베르니의 시위는 피켓의 문구처럼 빵과 일자리는 생명과 연결된 생존권이며, 이것을 잃는다는 건 곧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절박한 외마디가 떠오른다.



[비즈카야의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 / 전장에서] 그림 출처 :  V. M. de la Tejera

[5월 1일을 위한 준비 / 에필로그] 그림 출처 : Paco Velasco Aparicio

[시위] 그림 출처 : MA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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