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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ug 06. 2022

그림, 친구와 일상을 나누다

에밀 졸라, 폴 알렉시스, 귀스타브 제프루아_세잔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이 친구라는 조합으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다는 것이 놀랍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다. 예술을 사랑하는 친구들은 우정을 어떻게 나누었을까? 글을 읽어주고 듣고, 토론하는 친구들의 일상을 세잔은 한 발짝 물러서서 화폭에 담는다.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가족과 연인의 중간 그 어디 즈음일까? 또 다른 나의 자아일까? 우정이란 무엇일까?


Paul Cézanne_Paul ALexis Reading a Manuscript to Zola (1870)


이들은 감수성이 가장 풍부한 사춘기 시절 만나 함께 했다.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생각과 감정과 감각에 대해 서로에게 배우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잔은 평소 말이 없던 것 같다. 함께 이야기에 동참하기보다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경청하였기에 그림 속에 세잔 자신은 없다. 내향적이고 조금은 고집스럽지 않았을까?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의 성향이 그렇다. 아마도 세잔은 나처럼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 어려웠을지 모른다. 많은 이들과 관계 맺기보다 소수의 몇몇과 깊은 유대를 선호하고,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유형의 사람들은 정말 마음이 통하고 이해해주는 친구를 만나면 그 우정이 빛을 발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평소 말이 없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으로 사소한 오해를 쌓게 되고, 또 오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성향으로 그는 평생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았지만 그만큼 그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Paul Cézanne_Paul Alexis reading at Zola's house (1870)


세잔의 그림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그림이 전하는 투박함 속에 안정감과 견고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함이 주는 정돈된 감성은 세밀함이 주는 풍부함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나는 정서가 메말라 고갈된 느낌일 땐 돌치의 그림을 보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갈피를 못 잡아 혼란스러울 땐 세잔의 그림을 보곤 한다. 세잔의 투박함에는 힘이 있다.


세잔의 그림이 가진 에너지는 아래 스타브 제프루아의 초상에 잘 드러나 있다. 그와도 친구였다.


Paul Cézanne_Portrait of Gustave Geffroy (1895)


미술평론가, 기자, 작가였던 제프루아는 그의 직업에 맞게 서재 책장에 서적이 가득하고 테이블 위에는 작은 조각상과 꽃병, 여러 책이 한꺼번에 펼쳐있어 평소 그가 심미를 탐구하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오랜 시간 연구한 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인물이라는 것이 그림에 드러나 있다. 진지한 표정이, 그가 쓴 글 역시 매우 진지하다 말해준다. 배경이며 주변이 뭔가 가득 차 있지만, 인물이 그 어지러움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도드라진다. 어지러움 속에 질서와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시점을 적용한 그림은, 생동감 있으면서도 안정적이고 굳건한 제프루아의 자세와 책장의 비스듬한 책들, 탁자 위 펼쳐진 책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서로 엇갈리며 지그재그로 세모꼴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조화롭다. 구도의 안정감이 관람자에게 편안함과 단단한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세잔 그림의 독특함이다.   


세잔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좋은 친구를 만났, 수줍고 서툴기만 한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표면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이야기로는 이들과 관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다 할지언정 세잔은 죽을 때까지 늘 그 친구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순간의 감정으로 모질게 절교를 선언했지만 나는 그가 평생 마음으로 친구들을 그리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잔의 힘은 우정의 기억이었고, 그 동력으로 그는 고독함을 견디며 죽는 날까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잔] 그림 출처 : Paul Céz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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