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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ug 13. 2022

그림, 역사를 증언하다

전쟁과 학살_피카소, 마네, 고야


그 옛날 역사를 기록한 그림이라고 하면, 왕이나 영웅의 업적 또는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었지 일반 서민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19세기에 들어서 화가들은 영웅적인 역사화에서 벗어나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그 참상을 남겼다.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가해자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소개해 드릴 그림은 피카소의 1951년작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a)'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대표적인 반전 작품으로 너무나 유명하지만, 우리의 6.25 전쟁을 그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이 그림이 알려진 것은 근래의 일이다. 작품의 동기가 된 사건은 신천 학살로 양민을 학살하는 군인이 미군인지, 북한군인지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금지된 작품이었다.


피카소는 그림에서 학살을 저지르는 군인들의 국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철모가 아닌 투구를 쓴 듯한 모습이나, 뒤에서 칼을 들고 지휘를 하는 듯한 이의 모습은 영락없이 중세시대 기사, 서구 제국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천 학살은 1950년 10월부터 12월까지, 황해도 신천군에서 민간인들이 학살된 사건으로 미군에 의한 민간인들의 학살이란 주장과, 인민군에 의한 동족 학살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아직 그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Picasso_Massacre en Corée (1951)


무자비하게 총을 들고 겨냥한 군인들 앞에 서 있는 이들은 전쟁에서 가장 힘없는 여성과 아이이다. 공포에 일그러진 얼굴로 아이를 등 뒤로 숨기고 있는 임산부, 갓난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는 여인, 죽음을 예감하고 저항조차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는 엄마와 그 손을 꼭 잡고 있는 소녀, 아무것도 모른 채 흙장난을 하고 있는 아기, 총을 겨눈 군인에 놀라 엄마 품에 달려드는 소년... 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그 어떠한 것도 갖추지 못한 채 알몸이다. 배경에는 색이 칠해져 있지만, 인물들은 회색과 검은색으로만 나타내 이들이 더 이상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성을 잃은 군인과 생명을 빼앗긴 피해자, 그들 모두는 지금 죽음의 영역에 있다.


아래는 '피리 부는 소년', '풀밭 위의 점심 식사'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네의 작품이다. 1867년 6월 19일 멕시코에서 일어난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그린 것으로,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마네가 이 사건의 배후인 프랑스에 책임을 묻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목적을 그림으로 나타낸 작품으로, 실제로 막시밀리안은 멕시코인들에 의해 처형됐지만, 그림에서 그를 처형하는 이들은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다.


Manet_ L'exécution de Maximilien (1868-1869)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를 점령하고 오스트리아에 살던 막시밀리안 대공을 불러와 허수아비 황제 자리에 앉혔다.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멕시코에는 독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이 개입하면서 막시밀리안은 프랑스에 버림받았다. 마네는 필요에 의해 막시밀리안에게 황제 자리를 주고, 가차 없이 버린 프랑스가 결국 그를 죽게 했다는 비판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위의 두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 있다. 고야의 1814년작 '5월 3일의 처형'이다. 포르투갈을 정복한다는 명목으로 스페인 땅에 들어온 프랑스에 맞서 1808년 5월 2일 스페인 시민들이 저항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은 5월 3일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다. 이 잔인한 탄압은 큰 분노를 불러일으켜 스페인 독립전쟁으로 이어졌고, 6년 후 프랑스군은 스페인 땅에서 물러났다.


Francisco de Goya_Los Fusilamientos del 3 de Mayo (1814)


총을 겨누는 프랑스 군이에 맞서는 스페인 시민들은 죽음을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마주하고 있다. 이미 비참히 죽어 쓰러진 이들 위로 사람들이 서 있다. 두려움에 눈을 가린 사람, 주먹을 불끈 쥔 사람, 양팔을 들고 온 몸으로 총을 막고 있는 사람 뒤편으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행렬하는 무리들이 앞으로 앞으로 나오고 있다. 죽음이 두려워 얼굴을 두 손에 묻었지만 도망치지 않는다. 죽음을 항해 묵묵히 앞으로 한 발짝씩 내딛을 뿐이다. 양팔을 번쩍 든 사내의 오른손 바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못 자국과 같은 성흔이 보이는데, 죄 없는 죽음 곧 희생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죽음이 삼킨 밤은 별빛 하나 없는 어둠 그 자체다. 절망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성당의 첨탑은 구원이 아닌 무덤을 말하는 것 같다. 얼굴도 없는 침략자는 이들 모두를 죽였다. 그리고 화가는 이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  [피카소] 그림 출처 : PABLO PICASSO

※  [마네] 그림 출처 : LBHNO

※  [고야] 그림 출처 : Museo del Prad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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