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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Sep 24. 2022

그림, 순수한 존재들과 교감하다

애완을 넘어 반려_브리튼 리비에르


리비에르는 영국의 화가로 작품의 대부분이 동물에 관한 그림이었다. 반려라는 개념보다 애완 또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취미나 장난감 수집처럼 동물을 키우던 시대였기 때문에 리비에르의 따듯한 시선과 동물과의 교감을 표현한 그림은 참으로 놀랍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상호 간에 관계 맺음에 있어 감정보다는 효율성과 능력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에 반해 인간적인 관계는 메말라 가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은 순수하다. 반려인의 지위 고하와 경제적 능력, 외모, 학벌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사랑할 뿐이다. 거실에 함께 있다가 1분만, 아니 단 30초만 다용도실이나 화장실다녀오면 마치 한참 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반겨주는 존재가 또 어디에 있을까.

    

Briton Riviere_Requiescat (1888)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용맹한 그가 누워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던 그는 지금 잠을 자는 것일까? 누워있는 가슴 위에는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는 월계수가 놓여있다. 그런데 숨소리가,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라면 몇 번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줬을 커다란 손 옆에 그의 개가 앉아 있다. 그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은 가슴을 보란 듯이 당당히 내밀고 있지만, 슬픔을 직감한 뒷다리는 힘 없이 풀려있다. 어서 일어나라고 조르고 싶지만 '망자를 위한 기도'란 제목처럼 의연히 묵도하며 참는다. 개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아래 그림의 제목은 '충실함'이다. 밀렵꾼인 그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밀렵 과정이었는지, 체포 과정이었는지 몰라도 팔까지 다친 그가 실의에 빠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자, 개는 그의 다리에 턱을 괴고 걱정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귀는 쳐졌고, 꼬리도 내려갔다. 어쩌면 개는 자신의 잘못으로 파트너가 다쳤고 슬퍼하는 것이라 자책하고 있는지 모른다.


Briton Riviere_Fidelity (1869)


동물들은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고 교감을 할 때 기꺼이 사람을 도우려 하고,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에는 자책을 하기도 한다. 마장마술이나 경마 중 기수가 말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자신이 파트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에 다시 경기를 나서지 못하는 말들이 많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Briton Riviere_Compulsory Education (1887) / Sympathy (1878)


'의무 교육'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책을 읽고 있는 소녀와 책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소녀의 품에 안겨있는 개의 모습이다. 소녀가 보고 있는 책이 궁금해서 개가 머리를 들이민 것인지, 소녀가 책을 같이 읽자고 개를 껴안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렇게 듬직한 개와 함께라면 아무리 하기 싫고 재미없는 공부라도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개는 소녀가 책 읽기를 마칠 때까지 우직하게 곁을 지킬 것이다.


'동정'이란 제목의 작품에서는 엄마에게 혼나 계단에 쫓겨나 앉아있는 소녀를 흰 개가 위로하고 있다. 마음을 함께하고 나누는 것은 따듯한 물 한 모금처럼 우리의 영혼을 적신다. 뾰로통 튀어나온 소녀의 입은, 어깨에 턱받이를 한 개의 온기에 곧 미소가 가득할 것이다. 실제로 이 장면은 화가의 딸인 밀리센트의 모습이라고 하니 그림이 더욱 귀엽고 사랑스럽다.


남자가 손에 쥔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길래 찡그린 미간이 굳었을까? 그의 분노에 상실감이 느껴진다. 편지를 구겨 주먹을 꽉 쥐고 있지만 허망함에 두 다리는 쭉 뻗었고 쓰러질 듯한 몸은 의자를 짚은 왼손에 의지하고 있다. 이 남자에게 들이닥친 건 배신이다. 바닥에 힘 없이 떨어져 있는 편지봉투가 꼭 그의 처지 같다. 개는 귀를 바짝 세우고 꼬리를 흔들며 남자의 꽉 귄 주먹 위로 자신의 손을 얹는다. 마치 '괜찮아, 이제 그 주먹을 풀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Briton Riviere_Jilted (1887)


제발 그가 고개들 들어 저 개의 눈빛을 한 번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는 저 개의 눈빛만으로 남자는 꽉 쥔 주먹이 저절로 스르르 풀릴 것이므로.

 

아래 그림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구이자 가족이 영면에 들었다.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그들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먼저 가 있으면 곧 다시 만날 거라는 약속과 함께...


Briton Riviere_The long sleep (1868)



※ 그림 출처 : Art Forever /  Artecologíapolí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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