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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Oct 01. 2022

그림, 자신을 바라보다

자화상_소모프


화가는 어떤 마음으로 자화상을 그릴까? 자서전과 같은 의미일까? 화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면과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모습까지 꿰뚫어 보고 성찰하는 시간... 일생을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화가가 있다. 콘스탄틴 안드레예비치 소모프(Konstantin Andreyevich Somov). 그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을까? 왜?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 그의 그림은 알면 알수록 많은 수수께끼를 남긴다.


내가 처음 소모프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의 풍경화 작품들이었다. 그림의 독특한 구도는 익히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흔하게 볼 수 없던 시선으로, 마치 드론을 날려 공중에서 피사체를 카메라로 찍은 듯하다.

   

 Poets (1898) / The Bathers (1899)
Confidentials (1897) / Family happiness (1890)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게 그린 그림들... 원경의 시선은 무얼 말하는 걸까? 피조물을 내려다보는 창조자의 관점일까? 지극히 사사로운 개인의 일상이란 것을 말하는 것일까? 평범한 모습들이 시각적 위치 하나로 매우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그림에서 특징적인 소재를 꼽는다면 낮을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무지개, 밤을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불꽃놀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잡을 수는 없는, 순간 사라질 영원하지 못할 찰나를 그림 속에 자주 등장시켰다.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잡을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 것.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Landscape with a Rainbow (1919)


 Fireworks in the Park (1907)


결정적으로 나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은 그림이 있다. 바로 아래 작품이다.


Painful Confession (1928)


이런 슬픔을 본 적 없다. 남자는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있고, 여인은 그의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고개를 파묻은 채 엎디어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땅에 뿌리를 내린 것 같은 비탄과 절망. 환하게 꽃피어있는 나무들의 풍광이 더 서럽기만 하다. 이토록 가슴 에이는 그림이라니! 이 연인들은 무슨 사연이길래 이렇게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것일까? 어떤 고백이 이토록 아프단 말인가?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화가에 대해 몹시도 궁금해진 나는 그의 여러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더욱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그림들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바로 서두에 언급했던 자화상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든 모습까지 꾸준히 자기 자신을 그리고 또 그렸다.

  

1895 / 1898 / 1902
1909 / 1921
1928
1933 / 1934


자세히 보아도 잘 알 수 없는 원경의 시선을 그리고, 손에 잡을 수 없던 것들을 그리던 화가는 자신의 초상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너무도 세밀하게 그렸다. 오직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홀로인 자신을 집요하도록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리는 작업은 분명 그에게 특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궁금증을 주지만 그림 속 화가는 아무 말이 없다. 오직 자신과 마주한 시간들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이다.


그림 출처 : Konstantin So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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