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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Oct 08. 2022

그림, 도움을 청하다

위태로운 사람들_메를, 소이어, 콜레소바


우물가에 앉아있는 이 여인은 어떤 사연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 줄을 놓쳐버린 걸까? 프랑스 화가 메를의 작품 '에트르타의 광인(人)'이다. 에트르타는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으로 아름다운 절벽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고, 노르망디의 중심에는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루앙 대성당이 있다. 자연과 문화 예술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요한 곳에서 여인은 모든 걸 놓아버렸다. 그럼에도 차마 모성만큼은 놓을 수 없었다. 정작 자신은 맨발이면서 꼭 끌어안고 있는 통나무에는 춥지 않게 모자를 씌우고 포대기에 고이 쌌다. 이 아이는 내 아이야. 아무도 이 아이를 내게서 뺏을 수 없어. 그녀의 눈은 결단코 아이를 빼앗기지 않겠다 말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정신 줄을 놓아버린 여인들은 하나같이 베개나 인형, 통나무를 끌어안고 다녔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는 늘 마음 아팠다. 자신의 삶은 놓쳐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놓아버릴 수 없는 단 하나가 모성애라는 것이 못내 아리고 쓰리다.


Hugues Merle_The Lunatic Of Etretat (1871)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해간다. 그 속도에 멀미가 나서, 나는 문득 멈추었다. 멈추었지만 그렇다고 평안을 찾은 것도 아니다. 불안한 눈과 떨리는 손....


Moses Soyer_Girl with a Cigarette (1968)


소이어의 이 그림을 보고, 소이어가 마치 나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닐까? 싶어 깜짝 놀랐다. 모습이 아닌 상태가 말이다. 어두운 배경에 퀭한 눈으로 슬픔도, 기쁨도 없는 얼굴을 하고서 앉아 있다. 아마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하루 종일, 혹은 며칠 째... 나는 늘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몰라서 한 박자 늦었다. 왜 이렇게 덥지? 몇 날 며칠을 이유도 모른 채 땀범벅이 되고 나서야 여름인 걸 알아채고 옷장에서 반팔을 꺼내 입었다.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춥지? 어깨와 손이 곱아야만 겨울이 왔음을 알았다. 마음을 잃어버린 공허한 눈은 꽃이 피거나 녹음이 우거지고, 단풍이 물들고 서리가 내리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보지 못했다. 보긴 보았지만 그저 망막에 상이 맺혔다 흩어졌을 뿐 그것을 머리로 인식하거나 가슴으로 느낄 수 없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매일 했다. 일을 할 때에는 일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18시간도 일하고 쉬는 날도 아무도 모르게 나가서 일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면 풍선이 한순간 푹 터지듯 그렇게 정신 줄을 놓게 된다. 나는 살기 위해, 터진 풍선이 되지 않으려고 마음을 버렸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쇼핑도 하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책도 영화도 보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오로지 집과 사무실만 오가며 모든 것에서 나를 분리시킨 채 보낸 세월이 15년쯤 된다. 일터가 도피처였고, 스스로를 그렇게 가뒀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 맞다. 그렇게 살 수 없다. 스스로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리 살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는 내가 그리 살았음에도 자각하지 못했다. 과부하가 걸려 폭발음과 함께 불타버리기 전 차단기가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스위치를 내린 것인지 모호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직장에서의 업무를 뺀 모든 부분이 전기가 끊어진 암흑 상태였다.


혼자 일 땐 얼굴도 없이 의자에 앉아있다가 출근을 할 때면 벽에 걸어 놓은 여러 표정을 쓰고 나갈 것이다. 아무도 그 얼굴 없는 고독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프다, 힘들다 말하는 사람은 곧 회복될 수 있다. 말도 못 하고 속으로 곯는 것이 정말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제발 주위에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한 번만 더 그 사람을 자세히 봐주기 바란다. 소리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지 모를 그 사람을...


Juliana Kolesova_Masks (2019)



※ [메를] : Un viaje a través de la Historia del Arte

※ [소이어] : Museo del Prado 2.0

※ [콜레소바] :  A sad guy with philosophy & shit




뜬금없지만...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고자 합니다. 위에서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랜 시간 저는 마음 없이 지냈습니다. 모든 스위치가 내려진 채, 안부를 묻지도 전하지도 않던 까마득한 날들. 버티듯 그저 살아내고 있던 시간의 끝에서 문득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한  작은 스위치 하나가  켜졌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꺼져 있었기에 그 불빛은 매우 희미했지만 마음속 구석구석을 비추었고, 저는 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작년 21년 12월의 끝자락이었고, 그 무렵 브런치를 알게 되어 올해 22년 2월 첫 글을 발행하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조금씩 이어가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세상과 저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통로를 통해 전한 이야기가 바로 저의 첫 번째 브런치 북 [마음버린 자리에서 마음을 만나다]이고, 그 글을 통해 알게 된 글벗들께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선물처럼 수줍게 보여드리고 함께 감상하고 싶어 시작한 글이 바로 지금 연재하고 있는 [그림, 보잘것없는 삶을 그리다]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창작 활동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모든 브런치 작가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님 뿐만 아니라 독자분들 또한 가까운 미래의 브런치 작가님들이라 생각하며 그분들이 앞으로 발행하게 될 아름답고 멋진 글들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부족한 저의 글이 다른 작가님들의 창작에 모티브가 되거나, 그분들의 글 속에 인용된다면 그 또한 영광이고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글을 귀하게 여겨주신 마음에 어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만 귀하게 여기신다면, 그 귀함을 지켜주시기를 청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전에 말씀해 주시고, 글의 출처를 밝히는 문장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브런치 안에서 만난 많은 작가님들의 위로와 응원 속에 한 걸음씩 세상 밖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을 수 있었고, 오직 일과 여행을 통해서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확인했던 날들이 점점 확장되어 이제는 평범한 일상의 기쁨을 조금씩 경험합니다. 이 기쁨을 브런치에서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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