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 사이사이 직장을 옮긴 적은 몇 차례 됩니다. 그러나 이 때는 은퇴라기보다는 '직장이전'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전하려고 시작했는데, 그게 은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내게는 50대 말까지 은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은퇴는 59세 때였습니다. 구청 감사담당관 8년 차 되던 해였죠. 정년인 60세까지 1년 연장되기를 내심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인사권자는 연장해주지 않았습니다. 나가라고 하니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60세까지 근무하면 덜 억울할 것 같은데, 1년을 못 채운 게 내심 아쉬웠습니다. 할 일 못 마치고 쫒겨난 느낌이었습니다. 황무지에 버려진 듯했습니다.
직장을 떠난 후 1년 여 다른 직장을 찾았습니다. 60세 정년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지역구 보좌관 업무는 쉽지 않았습니다. 민원이 끝없이 밀려들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전화 오고, 휴일에도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정치인은 동네 민원을 처리해줘 봐야 고맙다는 소리 못 듣습니다.
"내가 표 찍어줘서 정치인으로 생색내는 것이니 오히려 유권자에게 고마워해야지".
"일 잘 하는 사람 많아. 그 정도밖에 못 할 바에는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정치인을 대하는 민원인이 많습니다. 자기 일 부탁하는 데도 당당합니다. 허망합니다. 정치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 사업입니다.
민원이 많은 건 참을만합니다. 약자를 돕는 경우에는 보람도 있습니다. 세상에 일이 많아서 그만두고 싶은 직장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람 관계가 마음 상처가 됩니다. 61세나 되었는데,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습니다. 보좌관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남을 빛내주는 역할입니다.
'지금까지 국회의원 보좌관 3번 하면서 의원 모시고 살았는데, 아직도 이래야 하나?'
'이제는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60세 넘도록 남의 보좌나 하기에는 내 인생 처량하다'
59세 은퇴 때에는 공무원 정년인 60세까지 채우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서 61세에도 일을 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하자. 지겹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니, 빨리 은퇴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래서는 오래 근무할 수 없는 노릇. 결국 61세 때인 10월경에 사직했습니다.
61세 은퇴시점의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복잡한 감정이었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서러움'이었습니다. 한 번도 인생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자의 낭패감, 남의 비서생활로 인생을 마감하는 자의 애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주인공으로 나서서 인생 역전한 대표적 케이스가 대통령 글쓰기 작가 강원국 님입니다. 그는 평생 남의 글만 쓰고 살았습니다. 남 앞에서 말 한 번 제대로 꺼낼 기회 없이 조용히 지냈던 그가 자서전을 계기로 유명해지고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면서 말도 잘 하고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책 한권이 인생을 바꾼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 밑에 들어가지 말자. 평생 충분히 남 밑에서 기죽고 살았다.'
'이미 나이 많이 먹었지만, 앞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 되어야지.'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61세 밤에 하던 생각과 각오였습니다. 은퇴 후 창업으로 인생의 방향을 잡은 배경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