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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Jul 20. 2024

쓰다 보면 눈물 날 때도 있다

감정을 직시하는 글쓰기


감옥에 갔다 온 적 있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계속 곱씹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잊고 싶어하고, 되도록이면 두 번 다시 말을 꺼내고 싶지 않으려 하겠지요. 주변 사람이 알게 되는 것도 꺼릴 테고, 숨기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저는 지난 9년 동안 한결 같이 감옥 갔다 온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는 것일까요. 수많은 예비 작가들, 그것도 생면부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저는 전과자입니다!"라는 말을 처음부터 끄집어내는 것일까요. 


가족간 갈등으로 힘들어했던 이야기, 누군가로부터 뒤통수를 맞아 바보처럼 주저앉았던 이야기, 못난 선택과 결단으로 후회 가득했던 이야기, 술에 절어 살았던 이야기, 파산했던 경험, 막노동판에서 일했던 경험...... 저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놓고 꺼내는 것일까요. 


인간의 감정은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을 참 힘들게 만들지요. 분노, 질투, 후회, 증오, 원망, 두려움 등 차라리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감정들 많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펼쳐지면 어김없이 이런 감정들에 휩싸이곤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직시하는 순간 사라지거나 줄어듭니다. 지금도 저는 극심한 통증으로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들 보내고 있는데요. '혹시 이 고통이 앞으로 영원히 계속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이 매 순간 저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회피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겉으로는 태연하게 지낸다고 가정해 봅시다. 남들 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속은 아마 썩어 문드러질 겁니다. 어쩌면 그런 가식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감정은 피한다고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회피하고 도망간다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지요.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내 고통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혹시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팩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가. 


매일 생각하고 글 쓰고 감정을 정리합니다. 처음에는 마냥 무섭고 불안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제 병과 상태를 직시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지금 당장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견디기가 훨씬 편안하고 용기도 생겼다는 뜻입니다. 


감정을 피해서도 안  되고, 감정에 휘둘려서도 안 됩니다. 감정 그 자체는 '내'가 아닙니다. 단지 내가 느끼는 일종의 가상 현실일 뿐이죠. 옳다고 믿으면 옳은 게 되고, 아니라고 확신하면 아닌 게 됩니다. 조종관을 내가 쥐고 있으니 제대로 조종만 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싹 다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일 수 있지요. 무슨 일이든 그 대상이 선명해질수록 해결 가능성도 커지는 법입니다.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전과자'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트라우마라고 하기도 하지요. 지금은 어떨까요? 그냥 과자 이름 같습니다. 이제 그 단어는 제가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습니다. 그 외 다른 모든 지난 아픔들도 지금의 저를 흔들 수 없습니다. 


글쓰기란, 감정을 직시하는 돋보기와 같습니다. 머릿속 마음속에 스물거리는 불투명한 찌꺼기들을 백지 위에 선명하게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형체가 없는 망상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바꾸고, 그래서 해결책을 찾든 영원히 무시하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감정을 직시하고 두려움과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솔직하게 써야 합니다. 자기 안에 가득 차 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있는 그대로 몽땅 끄집어낸다는 생각으로 쓰는 것이죠. 단, 부정적인 감정 단어들로 욕만 쓰라는 게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팩트 위주로 써야 합니다. 미치겠다고 쓰는 게 아니라 밥 먹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고 쓰란 뜻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절대 의식해서는 안 됩니다. 글이라는 게 다른 사람 위하는 도구입니다만, 감정에 관한 글 만큼은 첫 번째 독자가 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당당할 수 있어야 독자도 챙길 수 있습니다. 


셋째, 자기 감정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작 이런 일로 두려워하는 것인가. 고작 이 따위 일로 불안에 떠는 것인가. 이런 생각 딱 접어야 합니다. 감정은 내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오히려 이를 피하고 도망가는 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당당하게 마주하고 해결해 보겠다는 자세로 덤비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글 쓰다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 또한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힘들지요.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과정입니다. 소독하고 약 바르고 붕대를 감는, 적극적인 치유 행위입니다. 


아픈 곳에 에너지가 모여 있습니다. 상처와 아픔에 콘텐츠가 있습니다. 분노와 원망과 후회에 다른 사람 도울 만한 가치가 스며 있습니다. 감정을 감정만으로 폭파시키지 말고, 글쓰기라는 도구를 활용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의미와 가치로 전환하시길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글쓰기 코치 이은대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전과자입니다!"

두 번째 인삿말 하나로 저는 최고의 성과를 냈습니다. 과거 쓰린 상처와 파멸에 가까웠던 아픔 덕분에 누구보다 극적인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거지요.


진심입니다. 당신의 과거를 응원합니다.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사랑합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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