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니 그렇다고 치자. 가장 큰 문제는 처음 약 2년 동안에는 내 첫 아이가 하드 모드 캐릭터라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첫째인데다 주변에 또래 애를 키우는 사람과 그다지 왕래하지 않으니 내가 의지한 건 육아지침서들이었는데, 두 돌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발달 체크 사항에서 또래 대비 벗어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도 모른 채 남들보다 모성애가 부족하고 의지가 박약해서 이렇게 육아를 힘들어 하나 자책하고 우울해했다.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예뻐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고 마치 돌덩어리나 벽에 말을 거는 기분인 적도 많았다.
[시스템 메시지: 플레이어의 과실로 인해 캐릭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발현되었습니다.]
이 캐릭터의 플레이가 하드 모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출생 때부터 알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는 확연히 달라졌을 거다.조기부터 신경써서 발달지연이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었겠지. 아이도 나도 남편도, 이렇게까지 심신이 망가지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신 중과 출산 직후의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발달장애나 지연은 조기 발견이 어렵다.
게다가 우리집 같은 경우는 아이의 건강이 망가지고 서서히 발달속도가 늦어져가는 과정 앞단에 내 심신 건강의 심각한 저해가 선행되었고, 관련해서 주변 가족의 무관심과 오해가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내가 이미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을 살뜰히 챙길 여력이 없었다.
아무도 악의 없고 제 나름의 열심이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를 짚어 탓할 수는 없지만, 나 포함해서 잘못 없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시스템 메시지: 녹색무기 2강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발달이 지연된 아이가 작게라도 발달한 모습을 보여줄 땐, 전설급 무기 7강 강화에 성공한 것 같은 기쁨이 있다.
어떤 부모든 아이의 발달을 확인하는 순간은 원래 기쁘겠다만,이렇게삶이 휘둘려가며 희노애락을 겪어야 할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겪어보니 발달이 늦는 하드 모드의 아이는 그렇더라.100개를 쏟아부으면 한 개 건질까 말까 한다. 타고난 지능이나 학습능력 부진이라기 보다는 건강과 영양 문제에 가깝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안타깝다. 답답해서 화가 난다는 자체도 미안하다.
(우리 아이의 경우는 선천적으로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요소가 있긴 한데, 발달지연의 치명적인 원인은 양육하는 과정과 환경에서 생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둘째 아이는 다소 빠른 속도로 발달하며 무난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메시지: '김칫국'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눈물'이 소모되었습니다.] 최근에 시작한 치료방법이 효과가 있는 건지 건강상태가 호전되었다. 아토피 같은 피부 염증이 줄어들고, 수면장애가 줄어들었다.
말하기와 주변에 대한 관심도 보다 늘었다. 하지만 '이 단계만 넘어서면 금방일 것 같은데.' 라는 희망고문이 이어지는 상태다. 김칫국과 눈물을 번갈아 드링킹하는 몇 년째의 삶이다.
두 돌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번 그렇다. 자랄듯 말듯, 아이는 아기와 어린이 사이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겉보기에 멀쩡할 뿐더러 키까지 꽤 큰 편인데, 머릿속에 뭐가 얼만큼 들어있을 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발달지연 아이들이 실제로는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느끼며 기억하고 있음을 나도 인지하고 있기에, 지켜보고 있다.
사실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상황에 아이는 인생 전체에 피해를 입었을 뿐인데 희망고문이라 해도 고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참 미안한 일이다.
[시스템 메시지: 봄까지 '64일' 남았습니다.]
겨울은 발달지연 아이들에게 어려운 계절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는데다가 추워서 활동하기 쉽지 않으니, 발달의 최우선적인 요소 중 '운동'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워서다.
현실적으로도 시적인 표현으로도, 봄을 기다리는 요즘이다. 아이에게 원래의 건강과 삶의 자유를 되돌려줄 수 있기를 매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