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 중에 얘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라는 뉘앙스로 여러 번을 꼬치꼬치. 그렇게 그 여사장은 우리 아빠에게서 '네.. 우리 손주애가 장애가 있어요.'라는 대답을 마침내 받아냈다.
그 작은 원룸 숙소에서.
손주애 당사자와 아이 엄마인 나와 동생인 딸, 그리고 외삼촌인 내 오빠네 가족들까지 모두 앉은 자리에서. 아빠는 몰아치는 잦은 질문에 치여서 자신의 외손자를 장애라 명명했다.
나 아닌 누가 내 애를, 아니 나마저도.
누가 함부로 누군가의 장애를 진단하는가. 의사도 환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장애 진단을 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내 애에게 장애를, 그것도 내 아버지의 입을 통해 명명 당했다.
아빠의 말을 들은 여사장은 '옳타쿠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곧장, 다른 일을 하던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이 교정 그런건 안해요?"
이 불쾌감을 넘어설 대답이 나오지 않아 나의 침묵이 이어졌다. 몇 초 후 대답했다.
"교정이라 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하라는 건 다 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 여사장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띄며 얘기했다. 자기 언니네 손녀도 초등학교 2학년인데 저렇다며. 그런데 애엄마인 딸애가 인정을 안 한다고.
그래서 일반학교에 보냈는데 아이가 담임선생님을 꼬집는다고. 말이 안 통하니까 답답해서 그런가보다고.
그래도 쟤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며, 말하려고도 하지 않냐며. 노래도 하네요 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직 손주가 없어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방에 와서 놀다 갔다는 여사장이 나간 후, 나는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영 기분이 좋진 않네요."
엄마는 대답했다.
"나름 배려한답시고 한 얘기일거야."
저게 배려라고?
사람들을 보다 보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게 관심인양. 작년 이맘때쯤 센터 수업 후 택시를 탔을 때도 그랬다.
담배냄새가 밴 택시의 내 부모님보다 나이 많은 기사는 내 아이에게 나이를 물었고, 대답을 못하자 '에이, 바보네 바보야.'라며 우리에게 말했다.
이것도 관심인가. 아까 그 여사장의 행태도 내겐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나에게 말하든지. 이틀 내내 아빠를 곤혹스럽게 했다는 사실에도 치가 떨렸다.
아무튼 엄마아빠에게 서운함을 토로함과 동시에 말했다.
장애라는 것은 누가 함부로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 본인이나 가족을 장애라 명명하는 순간 특히 정신과나 발달 영역에 있는 류의 사람들은 안 그래도 편견(혹은 사실 기반한 낙인)에 치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장애 등록을 할지언정 스스로 내 애가 장애인이다라고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고.
최소한 나는 그렇다.
이 '스펙트럼'이라 명명하는 정신과와 발달의 영역에서 누가 장애인인가?
장애 등록을 하면 장애인이고, 안하면 아닌건가?
또래 평균에 가깝지만 장애인 등록을 해서 생활 보조와 지원을 받는 아이도 있고, 누가 봐도 또래들과 현저하게 다르지만 아무런 치료도 활동도 없이 생활을 하는 아이도 있다. 부모의 결정일 뿐이다.
미래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
소수지만 초등학교 도움반에 다니다가 고학년이 되어서야 일반반에 가거나 중학교에서 또래 평균까지 따라잡는 아이도 있다. 간혹 좋은 학교에 진학하거나 명예로운 직업을 갖기도 한다.
고지능 자폐만이 아니라 무발화 아동에게서도 그런 케이스는 있다. 발달이 지연된 이유가 뒤늦게 개선되고 천천히 따라잡은 상황일 것이다.
그런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아야 살 수 있어서, 아이의 부모들은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 속으로 인정하더라도 밖에서는 '아이가 좀 느려요' 정도로 말하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 규정하는 순간 그것에 얽매여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될까봐.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보통과 구분지을까봐.
있던 일은 마음에 묻어두고, 그리고 애들 보느라 정신 없어서 좀 잊어버리고, 열심히 애들 뒤치닥거리를 했다. 마침내 배 출항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그 섬에서 나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다가 그 여사장과 대화하던 상황이 떠올라서 벌컥 울음이 쏟아졌다.
엉엉 울면서 스피커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왜 우냐고 묻다가 장애라고 말하지 말라는 내 말을 듣더니 '이미 했던 말이잖아'라고 말했다.
이미 지적했는데 왜 또 말하냐는 것인가.
들은 나는 그 부분을 한 번 지적했다고 깔끔히 기분이 전환되는게 아니라, 평생 상처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는 말하지 않고 그만 생각하고 싶어서 전화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사장이 방에서 나간 직후보다 더 직설적이고 처절하게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아빠가 듣도록 스피커폰으로 바꿔줘서 한 번 더 말했다.
아빠가 운전을 한다지만, 사건 당사자인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전화한 나 또한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장애라고 말하지마. 스스로 그러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애를 자기네들이랑 다른 바보라고 취급하기 시작하는 거야.
영화에서 조승우가 나중에는 스스로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하잖아. 그러면 안되는 거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은 정신과나 발달쪽 문제를 나름 이해하고 있고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나는 느린 아이의 부모로서 만 2년 넘게 살아오면서 처절하게 그것을 느꼈다.
그래서 부모인 내가 스스로 아이를 낮추거나 굽히게 하면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울었고 다음 날도 울다가 내 조카 아이들을 떠올렸다.
지난 번 만남까지는 '쟤는 왜 엄마 말도 안 듣고 계속 말썽 피우냐'고 군소리해서 내가 눈치를 보게 만들던 오빠네 아이들이 이번 여행에서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애가 이틀 내내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거나, 비 오는데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굳이 쳐다보거나 뭐라 말하지 않았다.
진짜 배려란 그런 것이다.
알아도 상대방이 원치 않으면 내색하지 않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보다 이 여덟살, 다섯살 밖에 먹지 않은 아이들이 훨씬 더 성숙하고 속이 깊었다.
나는 여행 당시에는 '다음에도 저 아이들이 우리와 여행을 가줄까' 하고 걱정했지만, 이미 그럴 마음으로 와준 것이었겠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애도 저 아이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려 놀고 누군가를 배려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