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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린 Oct 19. 2023

그... 둘째는 괜찮아요?

육아/육묘 이야기 '오늘의 자식'

우리집 사정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는 질문이다.

첫째가 심한 발달지연(장애 진단 가능한 정도)이라고 하니,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묻는다.


사고가 아닌 이상 발달지연에 유전적인 요인이 없지 않다보니, 사람들은 둘째 상태가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되나보다.


질문대로 대답해주자면 '괜찮다'.

나의 둘째는 언어와 인지가 다소 빠르고 대소근육은 약간 늦은, 뭐는 빠르고 뭐는 늦어서 전체적으로 보통인 그런 애다.



내가 생각하는 둘째는 그냥 건강상태가 무난하다 못해, 한 가정의 빛이고 에너지원이라 할 만큼 고맙고 소중한 애다.


첫째는 남자애라서도 아기 때부터 다소 무던했다. 그런데 갈수록 자기주장만 강해져가고, 자기중심의 의사소통과 교감만 하려 하게 되었다.

(첫째가 이렇게 된 원인은 약간의 유전적인 요인적잖은 양육환경적 문제였어서, 결국 모두 어른 잘못이다. 다만 아기가 아파져가는 과정에서는 나도 남편 아무것도 몰랐고, 내 심신이 이미 망가져서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둘째가 없던 시절에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예뻐보이는 날이 많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짚어보자면, 둘째가 우리에게 자의적 상호작용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첫째를 키우느라 심신을 갈아넣는데, 그 보상인 교감과 발달 측면에서의 성장을 와닿을 만큼 체감하지 못해서였다. 그 사실마저도 둘째를 키우면서 '아이가 너무 예뻐서 힘들어도 괜찮다' 싶으니 '어라?!' 하며 알게 되었다.


첫째와 둘째 포함한 모든 아기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다.

그런데 의사와 무관한 옹알이나 베넷웃음 이상의 '자의적 상호작용'을 할때 사회적 인간으로서 모습이 발현된다.

그것이 신체성장과 언어 및 인지 발달을 포함해 부모가 받을 수 있는 아주 큰 <육아의 보상>이다.

첫째이자 남자애가 그 부분이 다소 미약했다 보니, 둘째이자 여자애의 사회성 발현 시점에 우리는 폭발적인 감동과 기쁨을 맞이했었다.



아무튼 둘째 키우며 예쁜 맛을 알게 된 덕분에, 그 후로는 다소 적거나 미미한 날들도 있지만 첫째의 예쁜 맛도 잘 알게 되었다.

아이나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들고 짜증이 날때도 '쟤는 왜 저럴까'가 아니라 '아픈데 얼마나 힘들까 내새끼'로 마음의 디폴트도 다시 세팅되었다.



볕이 덜 드는 호숫가 같았던, 모두 살아는 있지만 살기에도 벅찬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물줄기가 흘러들더니, 호수를 연결해 큰 시내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매번 새로운 물이 흘러들이 오래된 물을 흘려보냈다.


그로 인해 물이 맑아지고, 크고 작은 물고기들도 들아와 함께 살고, 너도 나도 한번씩 서로 바라보고 웃을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첫째와도 고양이들과도 하다못해 창밖의 까치나 잡새와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느낌 상의 얘기다.)



(둘째에게 쓴 표현을 그대로 갖다붙이자면) 괜찮치 못한 첫째와, 심신이 빠그라졌다 펴졌다 하는 나와 남편은 오늘도 조용하고 필사적으로 살고 있다.

고장난 시계 안에서 살던 우리를 바깥으로 꺼낸 괜찮은 둘째와 함께.

언젠가 첫째의 시계가 세상의 기준과 맞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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