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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린 Oct 22. 2023

마라톤 육아의 재정비 시간

육아/육묘 이야기 '오늘의 자식'

발달이 지연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마라톤 육아'라고 칭하는 것을 종종 본다.

완치에 가까운 회복이든, 현상유지든, 안 좋은 방향이지만 퇴행이든, 그 완주점의 결론을 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다.

신체 성장을 하는 이상 뇌기능도 계속 발달하고, 심지어 30세까지도 뇌 성장은 이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남은 시간이 많이 주어진 것 같아 다행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막상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는 지치는 레이스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희망이자 고문으로 쉬어가지도 기회비용을 따지지도 못하고, 각 가정의 판단에 따라 매몰비용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발달 치료의 포기나 비용 절감 시점)에 와서는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게 하는 잔인한 경주.


'얼른 잘 따라잡아야지, 없던 일처럼 회복해야지' 기대하며 치열하게 달리던 치료 1~2년차때는 일분일초가 괴로웠다.

학령기 2년 앞둬 더 이상 희망회로만 돌릴 수 없이 특수교육 정보를 알아보게 된 3년차에 들어서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기대치를 이전보다 줄이니 덜 괴롭다는 말일뿐 하나도 안 편안하다.)


마치 마라톤 초반에 너무 힘을 들이면, 체력 관리가 안돼서 전체적으로는 경기를 망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까.

드물게 1~2년 만에 치료 종결하는 케이스를 '내가 되고 말리라' 생각했었다.

이제와서는 그게 욕심이었거나 불가피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고 생각해서, 치료 기간이 3년차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마다 이 마라톤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다.

3년인지 5년인지 7년 또는 10년짜리인지. 거기까지라고만 해도 감사할텐데 설마 평생 완주점에 다다를 수 없는 마라톤은 아닐지.

 


더불어 다른 소리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발달지연 아동의 육아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같은 면도 크다고 본다.

상대방에게 잘하려다가 의도한 대로 안될 때마다 게임오버하거나 얘가 날 떠날 것만 같은 빡침과 두려움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발달지연 아동의 육아에서는, 양육자인 내가 하는 하나하나의 선택이 전부 다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영향력이 너무 크고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발달지연의 원인과 치료법이 현대 의학에서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터라, 각자 부모가 본인이 알아본 정보와 지식으로 치료 방향성을 잡아야 해서 그렇다.

(소아정신과나 재활의학과 등 병원 진료와 상담은 기본적으로 하되, 추가적인 치료나 교육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얘기다. 다만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행동교정이나 언어/놀이/감각통합 치료가 발달지연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다.)


고작 나라는 인간의 판단과 선택과 실행이, 타인이면서 내 자식인 한 사람의 심신의 건강과 인생을 좌우한다는게 무섭고도 무겁다.

다만 미연시를 플레이할때 정도의 분위기처럼 웃으며 헤쳐나가고 싶을 뿐이다.



돌아와서, 우리는 지쳐가는 마라톤의 중간 초입 지점에서 선수의 체력과 장비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연시로 치자면 지금 선수치지 않으면 망할 것 같은 위기상황이라, 주인공인 내 체력과 외모를 관리하고 주변 지인들의 여론도 관리하는 시점이었다.


- 일과 가정의 양립이 아니라 둘 다 대차게 망해가는 중이어서 육아휴직을 했다.

- 집을 보러다니기 시작해서 입주(이사)까지 한 달도 안 걸리는 이사를 했다.

- 첫째를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입소신청을 했다.

- 남편은 외주 받던 프리랜서 일을 그만두었다.


현재는 일시적 백수 가족이 되었지만, 그 모든 시도와 결정에 후회는 없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 나라에서 '아픈 사람들이 살기 가장 좋은 인프라를 갖춘 동네'이자 '최고의 학군지'로 이사왔다.


- 이사 온 이 동네를 살거나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의와 배려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서, 우리 아이가 간혹 소리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해도 누구 하나 그에 대해 내색하지 않았다.

  (이전 집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애엄마와 마주쳐 아이를 인사시켰다. '아으아에요' 정도의 어눌한 발음과 낯선 억양에 그 사람 눈쌀과 입매가 찌푸러지는 것을 봤다. 개인의 사건이었음에도 나는 그 집과 동네에 정이 떨어져 버렸다.)

- 첫째 아이는 내년 신학기부터 이 곳에서 새로운 교육기관에서 본인에게 가장 필요하고 잘 맞는 교육을 받을 것이다.

- 둘째 아이는 친구들만큼 학원을 많이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평화롭고 무해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심난한 우리집의 온갖것들에 우선순위가 밀렸던 불쌍한 우리 막내는, 나의 육아휴직 후 함께 하는 시간이 딱히 늘지 않았는데도 발달이 많이 진행되었다.

- 남편은 지난 1년 간 외주에 시달리며 폭풍 피드백을 받은 덕분에 그림 실력이 늘었고, 가정에 필요한 급전을 아이를 돌보면서 벌었다.


첫째와 둘째 각각의 교육과 보육에 대한 것은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육아휴직 기간 동안 허리띠를 잘 졸라매는 것과, 남편이 다시 4대보험 가입자로 편입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는 것.

그런 것들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수용하고 대책을 마련하며 되니, 오히려 아이들 문제에 비해서는 쉬운 일이다.



이제는 마라톤이 1~2년짜리든, 3~5년짜리든, 7~10년짜리든 감당해야겠지 어쩌겠나.

'할 수 있다'고 당차고 멋지게 말하기에는 난 다소 기력이 쇠했다.

그래도 내가 '완주점'이라고 말하는 '정상발달 구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야 성장기가 끝나는 그날까지라도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완주점이 끝끝내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또한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으니 내가 미리 포기할 수도 단정지을 수도 없는, 영역 밖의 일이다.

최상과 최악과 어중간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수밖에.


실낱 같은 희망의 신호 하나만 보여도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는 우리 가족은, 마라톤 중간에 마신 물 한모금에도 입이 너무 달다.

우리끼리 한껏 웃고 한숨 돌리며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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