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린 Oct 22. 2023

최소 113살 정도까진 건강하게 살고 싶다.

육아/육묘 이야기 '오늘의 자식'

좀 지난 얘기지만, 6월 정기 검진을 전후로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들었다.

4년 전부터 묘하게 혈압과 간수치가 장상치보다 올라가 있는데 영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앞서 3월 봄에는 디스크가 터져 짧은 휴직과 복직을 하며, 평소 건강에 신경쓰고 관리하던 같은 팀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전까지 것을 소홀히 했을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너무 흔해서 와닿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신체 건강도 건강이지만, 정신 건강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볼만한 작은 대화들도 있었다.



요즘 친구들이 내가 먼저 묻지 않았는데도 하나같이 '더 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을 한다.

주변인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고는 있지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 또는 다시 태어나서 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는 어떠냐는 말에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며 말했다. 나는

"예전에는 기 싫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가 아프고 그 외 원인까지 합쳐져 집안이 기울고 나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심신이 고달퍼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언젠가부터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게 되었다.

내 심정이 그렇다는 것을 최근 어느 순간 인지했다."

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다.

다른 것보다 죽기 두렵다고.

꿈꾸지 않으면서 자는 것 같은 상태일 거라 생각하지만, 내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런 류의 심신 건강에 대한 대화와 회상과 후회 이후, 나는 가급적 오래도록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엔 몰라도 이제는 자식들이 있으니.

이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심신이 건강해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무던히 표현하고 있지만 와닿기로는 매우 심각했다.

그래서 건강관리, 특히 먹는 것과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됐다.


이미 일년도 더 전부터 요리할 때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인공 또는 합성 감미료 등을 아이들 음식에서 배제했다.

아픈 큰 아이의 식단관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많이 나아진 지금도 그 원칙은 지킨다.

굶던 아침에는 고구마를 하나씩 삶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산화에 좋다는 음식들을 찾아보고 챙겼다.



6월 9일에 그리고 16일에 각각 친구들과 대화한 후부터, 엉겁결에 나의 심신 건강을 되돌아보고는 건강을 염두한 생활습관들을 하나씩 만들어가게 되었다.

웃기게도 삶에 미련 없는 친구들의 속내를 들은 덕에, 나의 삶에 대한 집착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더 웃긴 건 그리 말하는 그들은 주어진 삶을 엄청나게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이 자기네 의사와 무관하게 무병장수해서 나랑 계속 놀았으면 좋겠다.)



'100세 시대라 하니 100년을 사는 내내 건강해야지, 그래서 우리 애가 인이 되어도 건강할 수 있도록 케어해야지.' 라고 자연스럽게 다짐했다.

예전에도 지금도 너무 막막하고 막연해서 먼 미래를  상하거나 다짐할 수는 없다.

포기할 수 없지만 보장되지 않은, 내 큰 아이의 불확실한 미래가 그저 희망적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행복하게 해줄 >이라는 마음으로 인해, 경우에 수에 따른 각각의 계획이 조금 더 구체화되었다.


초등 고학년 정도면 그 시점의 발달상태에 따른 진로 설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 어떨지 알 수 없으므로 최상과 최악, 그리고 중간 정도의 시나리오를 모두 염두하고 아이의 진로를 고민 및 준비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들을 머릿 속에 정리하던 주말 오후, 땀 흘리며 뛰어 놀고 들어와 씻고 나서 머리의 물기를 털다가 문득 생각이 또 들었다.

'아. 100세는 무리라 해도, 애가 80살은 살아야 살만큼 산 거 같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내가 113살까진 건강해야 하겠구나.'

(우리 나이 34살에 첫째를 낳았다.)


그리고 연달아 생각이 들었다기 보다는, 자동적으로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무덤의 비석도 아닌 어느 돌덩이 옆에 작게 핀 들꽃. 진부하고 청승맞게도.

아이가 천수를 다 누리도록 잘 지켜주다가, 그러고 나서 정리하고 나도 누운 후에는. 아이 무덤 옆의 꽃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걸까. 왜인지 그런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그 이미지를 되새김질하다가 여러 번을 울다가, '마지막으로 그 꽃처럼 한 철 잔잔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반대적인 의지를 다졌다. 그래야 했다.

'케어만 하다가 죽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고 대비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자립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더 집중해야 한다.'

나는 여태까지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하고 넘쳐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들과 가정을 지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비타민C를 주문했다.

나는 113세까지 건강해야 하고, 욕심 조금 더 부려서 큰 애 100세를 기준으로 삼으면 133세까지 건강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 전에 내가 언제 죽어도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만큼, 아이의 신심 건강을 회복하고 선장시켜야 하니까.


나는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건강할 것이다.

이전 08화 그... 둘째는 괜찮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