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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Apr 24. 2023

친구 엄마

영주는 임신과 함께 필라테스 강사 일을 그만 둔지 9년이 흘러 어느덧 다정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엄마, 그 내가 좋다고 얘기했던 내 친구 윤서야. 정윤서."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 데리러 갔더니 다정이는 윤서랑 손잡고 계단을 내려와서는 영주에게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다. 그 옆에는 윤서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함께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영주는 눈 맞춤을 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어머. 안녕하세요. 네가 혹시 다정이니? 윤서도 얘기 많이 하던데. 쉬는 시간에 다정이랑 자주 논다고. 윤서가 다정이 좋다고 엄청 얘기해요."

"아. 네. 다정이도 반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윤서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 교환할 수 있을까요? 하교 후나 주말에 시간 되면 만나서 다정이랑 윤서랑 함께 놀아요. 윤서가 형제가 없어서 친구랑 노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애들도 가까워지고 우리도 친해져 봐요."

"아. 네."

윤서 엄마의 적극적인 모습에 영주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다정이한테도 자주 연락하는 친한 친구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카톡.

'다정이랑 윤서가 6년 동안 서로 찐 우정을 이어갔으면 해요. 자주 만나요.^^'

저녁 준비를 하는데 윤서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요즘 먼저 살갑게 친해지자고 하는 사람이 드문데 윤서 엄마는 달랐다. 첫인상만큼이나 쾌활한 성격인 것 같았다. 

'네. 시간 되면 함께 만나서 놀아요. 좋은 저녁 되세요.'

그 후로 영주는 윤서 엄마와 학부모총회 때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하교 후 다정이와 윤서와 학교 옆 카페에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져 갔다.

"다정이 엄마, 내일 오전에 시간 돼요? 내일 오전에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동네 엄마들과 만나는데 함께 갈래요?"

"아. 그래요?"

영주는 시끌벅쩍하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터라 부담이 되었지만 윤서 엄마가 자기도 처음 가는 건데 같이 가자며, 가서 별로면 다음에 안 가면 되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가보자며 간절히 얘기하는 바람에 가기로 하였다. 아이의 엄마로 만남을 갖는 건 처음이라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옷차림을 하고 가야 할지 화장을 하고 가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다음 날 영주는 평소 자신의 모습으로 편하게 입고 나갔다.


"어서 와요."

"새로운 멤버인가? 환영해요."

"우리 모임이 점점 활기가 생기네."

이 모임의 엄마들은 초등학교 1, 2학년 엄마들이었다. 이미 세 차례 모임을 갖었고 회장 엄마가 옆집 윤서 엄마를 최근에 알게 되어서 초대했다고 하였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되었다. 영주는 윤서 엄마 이름이 기수영이고 영주와 같은 나이라는 것을 알자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서로 아이 초등학교 얘기로 시작을 하였으나 점점 갈수록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불편한 편의점> 왜 이렇게 재밌어요? 소설이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나.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아이 하교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지. 참! 영주 씨, 수영 씨, 우리 독서 모임해요. 우린 누구 엄마 이렇게 안 부르고 서로 이름 불러요. 괜찮죠? 2주에 한 권씩 책을 정해서 마지막 주에 만나서 느낀 생각들을 서로 얘기 나누고 있거든요." 

독서 모임 회장인 희정 씨가 책을 꺼내며 소개해주려고 했다. 그 책은 영주가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여서 너무나 반가웠다.

"독서 모임 좋은데요? 저도 그 책 재밌게 읽었어요. 저는 하찮고 사소해 보이는 만남이나 일일지라도 그 안에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좋은데요. 잘됐다! 영주 씨, 우리 모임에 껴요."

"우리 첫 모임 때 기억나요? 우리 각자 얼굴빛이 별로 안 좋았잖아. 외롭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서 모임은 활기를 넣어준 것 같아요."

희정 씨가 지난달 첫 모임 때를 떠올렸다.

"맞아요. 자존감을 되찾아 준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만남 덕분에 저는 요가 강사 일을 다시 하고 있죠. 독서 모임의 힘인 것 같아요." 남편과 사업을 하다 잘 안 돼서 접고 육아의 길로 5년 째인 희수 씨는 몇 달 전부터 동네 문화센터에서 요가 강의를 하고 있다.

시어머님이 일하는 걸 반대하셔서 7년째 육아 전담을 하고 있는 희정 씨, 교육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자 적응기가 필요할 것 같아 1년 휴직을 낸 이연 씨, 중국어 학원 선생님을 하다 그만두고 10년째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수영 씨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모두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흔적이 느껴졌다. 특히 영주는 다정이 친구 엄마인 수영 씨가 영주처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우선이라 생각하여 학원 강의를 그만두고 육아를 하게 되었다는 데에 공감이 되면서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세상과 동떨어져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답답함을 느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가 되면서 짧은 만남이었지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수영 씨, 우리 이 독서 모임 멤버가 되어봐요. 재밌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영주가 이번엔 용기를 내서 수영 씨에게 독서 모임 함께 하자고 설득하려던 참이었다.

"네. 좋아요. 저도 오늘 만남 너무 좋았어요."

수영 씨도 영주만큼이나 모임에 대한 만족이 컸던 것 같았다.

"내일 아침 학교에서 봐요."

영주는 예전에 회사 다닐 때도 그렇고 집에 있을 때조차도 자신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성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이 만남이 앞으로 영주의 마음 한구석에 꽤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외로움과 헛헛함의 빈 속을 밝은 에너지 물결로 조금씩 채워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혼자서 끙끙 괴로워하는 거 하지 말자. 함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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